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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인위(人爲)와 무위(無爲)

by 大建 2015. 3. 20.

사순 제4 주간 금요일(요한 7,1-2. 10. 25-30)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조금 이상한 행보를 하신다.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1).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10).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오신 분이 "남몰래 돌아다니셨다"는 것이다.
체포와 죽음이 두려우셨던 것일까?
복음서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무엇인가 기다리신 것 같다. 무엇을 기다리셨을까?
결정적인 때를 기다리신 것이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
그 "때"가 이르기 전에 섣부르게 행동하면 모든 것을-아버지의 뜻을- 그르칠 수가 있었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우리의 의지가 너무 앞선 나머지 너무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나의 뜻을 내세우며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대로(人爲) 이루려 하면 일을 망치기 십상이다.
세상은 원래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위란 인간이 하는 행위라는 뜻이다. 반면 무위(無爲)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자연이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자연이 하는 이 무위는 인위에 익숙해진 인간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인위와는 다른 분명한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낮이 가면 밤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꽃이 피고 지고 또 피고, 사람이 태어나고 죽어 가는 모든 일이 자연이 하는 일이며, 무위가 하는 일,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바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겠는가?


예수는 바로 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사람, 다시 말해 신위(神爲)의 사람이었다.

우리도 우리가 원하는 때에 우리 뜻을 무리하게 펼치며 살려고 하지 말고
고요히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느님의 뜻(무위자연, 신위)에 의해 살아가기로 하자.


"주님 앞에 고요히 머물며 그분을 고대하여라. 제 길에서 성공을 거두는 자 때문에, 음모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 때문에 격분하지 마라"(시편 37,7).


                                                                                                                                                                                                    (57R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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