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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지혜롭다는 자들

by 大建 2014. 7. 16.

연중 제15 주간 수요일(마테 11,25-27)

시편 111,10     지혜의 근원은 주님을 경외함이니 그것들을 행하는 이들은 빼어난 슬기를 얻으리라. 그분에 대한 찬양은 영원히 존속한다.
잠언 9,10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곧 예지다.
잠언 15,33     지혜의 교훈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영광에 앞서 겸손이 있다.
집회 1,14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지혜는 믿는 이들과 함께 모태에서 창조되었다.

성경은 이렇게 한결같이 지혜란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하고 말씀하신다.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새겨본다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과 슬기로운 자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하시지 않고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하셨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참으로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 스스로 혹은 세상이 지혜롭다고 하거나 슬기롭다고 하는 자들을 일컬으시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에 "소위" 라는 말을 집어넣으면 이해가 빠를 수 있다!

예수님 당시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과 같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거나 혹은 세속적인 가치에 따라 세상이 지혜롭다고 일컫는 자들은, 구약성서의 여러 지혜문학서들이 전하듯이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두려워 하며, 그분의 영광에 승복하며 겸손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들어높이려고 하였으며("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마르 12,38-39), 더 나아가 하느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드러내 보이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박해를 하기에 오늘 이러한 기도를 드리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되기를, 즉 문자 그대로의 철부지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거룩하신 하느님을 경외할 줄 아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고, 당신도 그러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시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시는 지혜를 깨닫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이사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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