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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소통하는 믿음

by 大建 2015. 7. 29.

성녀 마르타 기념(요한 11,19-27)


"여자가 한(恨)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지만, 여자가 그저 삐지기만 해도 무섭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 전 파란기와집에 사는 어떤 여자의 독기서린 말 한 마디에 병신같은 남정네들이 모두 찍소리 못하고 무릎을 조아리는 모습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마르타는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들로 미루어 보면 예수님께 삐져도 여러 번 삐졌을 만한 사람이다. 

먼저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방문하셨을 때, 동생 마리아가 자기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예수님께 고자질하자 그분은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가 10,42) 하고 오히려 역성을 들지 않으셨던가.


또 오빠 라자로가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 와 주시기를 청하였지만 그분은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지난"(요한 11,17) 다음에야 도착하셨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여러 번 삐지게 만들면 관계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은데 마르타는 아마도 마음이 넉넉한 여인네였던 듯 싶다. 

하지만 마음이 넉넉함에 앞서는 것은 그녀의 굳은, 그리고 올바른 믿음 덕분이었다고 생각된다.

마르타는 스승 예수께서 항상 옳으시다는 것을 믿었고, 그 결과 그녀는 동생 마리아 막달레나와 함께, 그분께서 죽은 이들도 살려내시는 분임을 목격하였고, 또 그분 자신의 부활도 목격하게 되었으리라.


그런데 마르타가 이렇게 쉽게 삐지지 않고 믿음을 잃지 않았던 것은 믿음의 대상인 그분과 소통하려는 자세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주님이 집에 오셔서 식사를 준비하는 일로 분주하고 또 힘들었을 때, 마리아는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그분께 털어놓고 그분의 도움으로 동생 마리아가 자기를 도와주기를 바란다. 또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오빠 라자로가 죽고 나서야 도착하신 예수님께 마르타는 섭섭한 마음을 그대로 털어 놓는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번 모두, 주님께서는 당신 뜻이 마르타와 같지 않음을 자상스레 답해 주신다.  


믿음의 관계는 이렇게 성립되는 것이다! 대화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신뢰가 형성되는 것이다. 


기도는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하느님과 소통하려는 마음으로 기도하는가? 내 마음에 맺힌 것을 그분께 털어내려는 마음으로 우리는 진정 기도하는가? 아니면 그저 습관적으로 정해진 기도문을 나불대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진정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가? 아니면 그저 나 혼자 중얼거리는 행위를 반복하고 기도를 마치는가?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마르타 성녀는 인격간의 관계(그것이 하느님과의 관계이든, 인간간의 관계이든)에 있어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왜 소통이 신뢰의 바탕인지를 잘 보여주는 여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도 진정으로 하느님과 소통하는 기도, 혼자 독백으로 끝내버리는 기도가 아닌 대화하는 기도를 하기로 힘쓰자.


아무쪼록 파란기와집에 사는 저 여자도 마르타 성녀에게서 제발 소통하는 법 좀 배워서, 잃었던 신앙도 찾고, 사람들에게서 신뢰도 회복하게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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