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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차별없으신 하느님

by 大建 2014. 8. 20.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연중 제20 주간 수요일, 마테 20,1-16)

나는 나이 20살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앙인이 되었다.
그런데 초심자 시절에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더불어 "내가 조금 더 일찍 하느님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고, 그래서 그러한 안타까움이 때로는 부모님이 신자가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원망으로 변질되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앙의 초보자다운 무척이나 어리석은 모습이었다는 생각에 그저 빙그레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 일찍 세례받고 살아간다고 모두 다 거룩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이른 나이에 세례를 받았지만 하느님 사랑이라는 보물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냉담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보다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사제요, 수도자인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열심하고 기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이 보아왔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포도원 일꾼의 비유는 바로 이러한 점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복음의 이야기에서 일꾼들에게 품삯으로 주었던 "한 데나리온"을 역시 그 당시 화폐 단위의 하나였던 "한 달란트"로 바꿔서 읽으면 그런 의미에서 이해가 빨리 될 것이다. 여기서의 품삯은 하느님으로부터 거저 받는 은혜, 은총, 은사를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은혜, 은총은 본디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어떠한 댓가도 아니요, 조건을 달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치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일이 주어졌듯이...

하느님은 원래 인간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로마 2,11). 우리 모두를 당신 닮은 모습으로 창조하셨으며, 우리 모두를 사랑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똑같이 무상으로 은총을 베푸신다. 그 은총의 크기가 우리 각자가 지닌 그릇에 따라 어떤 이에게는 부족하게 보이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넘쳐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 질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정의다.

이제 하느님이 불공정하다고 탓하고,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적게 받는다고 탓하는 유아스러운 자세에서 벗어나기로 하자. 하느님에 대해서,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 깨우칠수록 우리는 성숙될 것이고, 그만큼 더 감사드리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시며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세례를 늦게 받은 것을 한탄할 필요도 없고 또 일찍 불림을 받은 것을 자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보시기에 마치 알에서 막 깨어난 저 작은 곤충들처럼 사랑스러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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