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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표리부동 (表裏不同)

by 大建 2014. 10. 14.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순교자 기념일(연중 제28 주간 화요일; 루까 11,37-4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게서는 식사 전에 쏜을 씻지 않으셨다. 그런데 예수님을 본받는다고 앞으로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는 신자는 없을까? 그런 사람은 손을 씻는 것이 자기 위생상 유익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남들 눈치보며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우리와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중근동 팔레스티나 지방은 고온, 건조한 기후라 먼지가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였기 때문에 위생에 많이 신경을 썼다. (정결례에 관한 규정들은 그러한 사회적, 환경적 요인을 배경으로 차츰 형성된 것이다. ) 그런데 부유한 사회 지도층들은 물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서민들은 물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서민들은 매 끼니마다 손을 씻는다는 것이 사실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한 바리사이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이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이왕 사람을 초대하였으면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게 해주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았으니 예수님께서는 결국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하고 가시돋힌 말씀을 하실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초대받은 식사 자리가 어떻게 끝났을지는 눈에 선하다.
어쩌면 그들은 일부러 트집을 잡기 위해 그러한 자리를 마련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표리부동(겉과 속이 다름)을 나무라시는 것이 아닐까?

서민들이 물이 귀해서 손을 자주 씻지 못하는 것을 비난하기 보다는 물을 나누어주는 자선을 바리사이들이 행했다면 그들은 주님에게서 표리부동하다는 말씀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계명에 담긴 참된 의미, "사랑-자선"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위선적으로만 종교생활을 할 때 우리 또한 표리부동한 인간이 될 수 밖에 없음을, 그리고 우리의 그러한 자세로 말미암아 이웃 사람에게도 위선이라는 바이러스를 부지불식간에 옮기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외적인)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5,6)


                                                                                                                                                                    (4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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