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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무지와 탐욕

by 大建 2015. 3. 6.

사순 제2 주간 금요일(마테 21,33-43.45-46)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떤 농부가  1천루불만 내면 하루 종일 걸은 만큼의 땅을 소유할 수 있다는 아주 싼 값의 땅을 소개받았다. 다만 조건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출발점까지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돌아오면 하루 종일 걸은 모든 땅은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농부는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1분도 쉬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농부는 깜짝 놀라 온 힘을 다해서 이제는 다시 출발점을 향해서 달렸다. 온 몸이 땀 투성이가가 되고 발은 찢기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지만 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해 지지기 전에 도착해야만이 땅을 소유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몹시 괴로웠지만 쉴새없이 걷고 또 걸었다. 지금까지 고생했는데 여기서 멈추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고 그리고 땅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농부는 힘내어 출발지를 향해 걸었고 마침내  도착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무리하게 걸은 탓에 그만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  결국 그는  자기 시신을 묻을 땅밖에 소유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톨스토이는 말한다. 결국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땅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자기의 본 모습을 알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소유할 듯이 욕심을 부리지만 결국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살아간다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할 정도로 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즉 주제 파악을 하라는 소리다. 우리가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가기에 때로는 다른 이들을 시기하고, 때로는 욕심을 부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욕심이 과하여 결국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 않는가!

오늘 복음에서도 소작인들은 도조를 받으러 온 예언자를 때리고 죽인다. 그래서 주인은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내지만 그들은 그 아들조차 죽이고 말았다. 포도원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주인은 그들 모두를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탐욕은 궁극적으로 모두의 불행을 불러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 소작인들의 모습에서 나는 자유로울수 있는지 반성해보도록 하자. 내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고, 또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망각할 때, 나 역시 탐욕에 눈이 멀어 그분께서 보내시는 이들을 해치는 소작인들과 다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5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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