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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믿음을 보시고

by 大建 2015. 7. 2.

연중 제13 주간 목요일(창세 22,1-19; 마태 9,1-8)


오늘 제1 독서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제사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과연 아무련 미련이나 갈등도 없이 외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을까?


아닐 것이다. 일찌기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아브라함의 제사 이야기를 주석하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늙으막에 선물로 받은 외아들 이사악을 

진정 하느님께 제물로 다시 바쳐야 하는지 갈등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는

"너는 나를 더 사랑하느냐? 아니면 내가 준 선물을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잘 살게 된 것을 결코 자신의 노력의 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축복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결코 집착하거나 안주하려 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살 수 있었다. 

아들 이사악 또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었기에 

하느님께서 원하실 때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려드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또 다시 그러한 삶의 축복을 주실 수 있으리라는 굳은 믿음으로 

자신도 고뇌에서 해방되고 결국 외아들 이사악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데려온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병자를 고쳐주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셨다고 한다.

사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환자 본인 혹은 주변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구원을 베푸셨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마테 8장 백인대장; 마테 15장 가나안 여인 이야기 등).


구원은 우리가 죄, 고통, 죽음 등 비구원의 상황으로부터 구함을 받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원은 단지 육체적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구원은 우리의 존재 전체가 영향을 받고, 우리의 삶이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온전히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 밖에는 안 계시다! 그렇기에 구원에는 믿음이 필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중풍병자를 데려온 이들이 아들 이사악과 이웃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선하심과 제한 없는 사랑, 섭리에 대한 확신-확고한 믿음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 하루의 삶속에서 과연 우리는 나 자신과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 대한 하느님의 섭리, 안배(마련해주심, 이레)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믿음을 지니고 있는지 깊이 묵상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