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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노숙자 예수

by 大建 2015. 9. 30.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연중 제26 주간 수요일, 루까 9,57-62)


1. TV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같은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실제 여우굴을 본 적이 있다.

새끼 여우들에게 굴운 정말 아늑한 보금자리다. 에미 여우가 함께 있을 때는 젖도 먹고 편안히 잠도 자고 또는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서 안심하며 형제들과 장난을 하며 뛰어논다. 그러나 에미가 먹이를 구하러 나갔을 때 새끼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가 에미가 돌아오면 다시 편안해 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간혹 에미 말을 듣지 않고 집을 멀리 벗어나는 새끼들은 많은 경우 더 상위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힌다고 한다.

우리 인간들에게도 집은 그러한 곳이 아닐까? 함께 행복을 나누는 가족이 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안정성을 잃었기에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아야 한다. 그들이 바로 노숙자들이다. 


2.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미국 방문 중에 "하느님의 아들도 이 세상에 올 때 집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고 노숙자들과의 만남에서 말씀하셨다고 해서 화제다. "집이 부족한 데 대해 사회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결코 그들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교황은 가장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기도가 끝나자 노숙자들 속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교황은 일반 시민과 똑같이 노숙자들과 악수하고 포옹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노숙자 예수" 조각상을 축복하고 있다. 이 조각상은 현재 미국의 도시들에서 순회 전시되고 있다.


3. 예수는 비단 이 세상에 오실 때만 노숙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공생활 중에도 오늘 복음에서 스스로 말씀하시듯이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삶,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삶", 즉 노숙자의 삶을 살아가셨다. 누구나 편안한 삶, 안정적인 삶을 바라지만, 그보다 더 큰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찾기 위해 세상의 안위마저 내려놓으셨던 것이고 가장 가난한 인간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그러한 삶을 택한 것이다.


4. 집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안락함의 공간이지만, 만일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다면 그 집은 "스위트 홈"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불편한 공간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 모두는 체험하고 있다. 반대로 (이곳 요양원같이) 내 집이 아닐지라도 사로 사랑하며 새로운 가족처럼 서로 위해주며 사랑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록 우리 각자의 집을 떠나 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집이라는 공간이 중요한 것이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함을 깨닫을 때가 행복한 것이고 바로 이러한 모습이 노숙자 예수가 꿈꾸던 하느님 나라의 모습인 것이다.


5.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본받아 외로움과 피곤함에 지친 이웃들에게 따뜻한 나의 손과 말을 건네기로 하자. 그들이 그안에서 하느님의 집, 하느님의 나라에서의 행복을 맛보고 누릴 수 있도록... 노숙자 예수는 오늘도 우리에게 도전하신다. 네 집의 편안함을 버리고 길거리로 나서라고...그리고 삶에 지친 네 이웃, 안식처를 찾고 있는 네 이웃에게 집이 되어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