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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뭣이 중요헌디? 뭣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by 大建 2016. 8. 23.

연중 제21 주간 화요일(마테 23,23-26)


"뭣이 중요헌디? 뭣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영화 "곡성"에서 나와서 요즈음 유행어가 되었다는 이 말이 떠오른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그야말로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었기에 분별력이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이는 그들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 체 하거나 적어도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가치관이 전도된(뒤집혀버린) 종교인들이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그들이 위선자 소리를 듣는 것은 따라서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 진실해야 할 종교인들이 겉과 속이 다른, 즉 표리부동한 인간들이라고 예수는 질타하는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나는 가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모습과 나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 그리고는 많은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의 위선적인 면과, 권위주의적인 면과 사악한 위정자들에 대해 말로만 뭐라고 뭐라고 하면서 정작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는 나태하고도 겸손치 못한 모습들을 볼 때, 나 또한 "별 다르지 않은 바리사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성직자들과 수도자들(나를 포함한)의 쇄신과 회개가 요청되는 대목이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위선의 탈을 벗기고, 뒤집혀진 가치관을 바로 잡고 온갖 더 할 수 없는 나태함 때문에 뒤로 밀어 놓은 하느님 나라의 보물들을 제 자리에 보존하려는 열성을 지니지 못하고, 신자들 앞에 위세나 부리는 모습을 그대로 이어간다면 이 시대에 오시는 주님께서는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하는 말씀을 요약하여 우리에게 "뭣이 중요헌디? 뭣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하시면서 호통을 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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