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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by 大建 2017. 1. 16.

연중 제2 주간 월요일(마르 2,18-22)


오늘 복음에 단식 이야기가 나오니 단식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우리 수도회의 수사님 중에는 몸에 감기 정도의 이상만 있어도 단식요법을 하는 분이 있다. 이러한 단식요법은 동물들은 몸에 이상이 있을 때 결코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견뎌낸다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이상이 생긴 몸을 비워냄으로써 몸을 새롭게 깨끗이 만든다는 자연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큰 정치적, 사회적 현안이 있을 때 소위 단식 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나 역시 6월 민중 항쟁 때, 그리고 세월호 사건 발생 2주년 때, 각각 3일 정도 단식을 한 경험이 있다. 이 경우에도 단식은 꼭 곡기를 끊고 죽기까지 싸운다기 보다는(물론, 자신의 주장이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그렇게 끝까지 단식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그러한 현안 앞에 선 자신의 단호한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 몸과 마음을 비우고 결기를 다지는 것이 단식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1일 대전 목동 본당에서 우리 작은형제회의 사제 서품식이 있었고 오늘은 수원 세류동 본당에서 우리 수도회의 성대서원식이 있다.

우리 수도자들이나 성직자들은 서품식이나 서원식을 앞두고 대피정을 하게 되는데, 피정 기간 내내는 힘들더라도 3일이나 7일 등 일정 기간 단식을 하는 경우가 있다. 단순히 열심한 마음으로 피정에 임하기 위한 자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인생의 전환점, 정체성의 변환을 앞두고 자신을 비워내고 새롭게 출발하기 위하여 단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몸, 육체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진 마음과 정신으로 하느님의 거룩한 소명을 받아들이려는 자세인 것이다.


성경에서도 단식은 많은 경우에 회개의 표시로 드러나며, 단식을 통해서 하느님을 멀리 하게 하는 죄를 끊어버리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새로운 존재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이해된다.

예를 들어, 속죄일에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단식하기도 하였다(레위 16,2). 구약시대의 단식은 상당히 엄격하였다. 속죄복(贖罪服)[苦衣라고도 한다]을 입고, 목욕도 하지 않은 채, 재[灰]를 뒤집어 쓰고, 노동과 부부간의 동침도 금지되었다. 신약성서에도 단식에 관한 기록이 나와 있다. 세례자 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단식하였다(마태 9,14, 마르 2,18, 루가 5,33-39).

이렇게 단식은 많은 경우에 단식은 하느님과 이웃과 자신 앞에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나기 위해 몸 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비우는 행위인 것이다. 단식은 그저 곡기를 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비움으로써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새로운 존재가 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만 관습에 따라 단식을 하다 마는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기에, 예수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그 올바른 의미를 알고 단식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즉, 메시아이신 당신, 혼인 잔치의 주인공인 신랑으로서의 당신이 함께 계시는 동안에는 단식을 하는 것이 옳지 못하고, 당신의 수난 이후에 그 의미를 되새기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단식을 하는 것이 옳다는 말씀인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올 것이니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뜻을 단식으로 드러내라는 말씀인 것이다. 이것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의 뜻이다.


과연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세례를 받은 이후에 제대로 된 단식을 한 번이라도 해보았는가? 온전히 나를 비워내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의지를 불사른 적이 있는가? 

한 번 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 단식임을 알게 될 것이다. 회개 또한 그렇다.  나를 비우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79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