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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by 大建 2017. 7. 14.

연중 제14 주간 금요일(마테 10,16-23)


나는 625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 태어났기에 그리고 그후에도 전쟁에 참여한 일이 없기에 전쟁의 참상에 대해 전해 들었을 뿐이지 그게 얼마나 끔찍한지 실제로는 잘 모른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들어 아는 바로는 전쟁에서는 생존만이 절대 선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한다. 휴머니즘이나 인간다움을 찾기 힘든 것이다. 전쟁이나 전쟁과 비슷한 상황이 지속되면 인간성은 말살될 수밖에 없다. 


전쟁이 워낙 참혹한 것이지만, 전쟁의 상처를 쉽게 잊거나 지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같은 민족 간의 전쟁일 경우 특히 더 그렇다. 우리의 625전쟁이 그렇고 스페인 내전이 그렇다. "같은 민족인데 어떻게 그리 잔인하게?" 라는 의문을 품기 때문이며, 이것은 다른 말로 믿는 이들에게 발등을 찍혔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동맹국에 의해 침략을 당하고 전쟁의 참화를 입게 될 경우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민족, 같은 이념, 같은 이익으로 뭉친 동맹들에게서 배신을 당하였다는 마음에 그러한 전쟁의 상처는 오래도록 치유되지 않는다. 우리 나라의 경우 차라리 일본 사람은 용서할 수 있어도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결코 용서하지 못한다는 사람이 많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인 것이다. 


비단 전쟁에서 뿐이겠는가? 개인간의 관계에서도 차리리 전문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했다면 쉽게 잊혀지지만, 철썩같이 믿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다면 아마도 결코 잊혀지지 않고 증오심을 키워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어찌 그럴 수 있는가?" 하는 믿음이 깨지는 것이 원래 전쟁이고 환난, 박해 등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믿을 분은 절대선이신 하느님 뿐이심을 가르친다. "하느님께 의지하여 두려워하지 않으니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시편 56,12) 


이렇게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또한 그분이 구원해주실 것임을 희망하기에 끝까지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 오늘 복음에서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테 10,22)하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인생 여정을 걸어가면서 환난과 시련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피곤하고 골치 아픈 현실을 피하지 말고 끝까지 견뎌야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끝까지 견디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선하심, 그분의 사랑이 보일 것이고 바로 그것 때문에 그는 역경을 견디어내고 끝내 승리할 것이다.


우리가 한 주간 동안 제1 독서에서 계속 들은 야곱과 12 아들들의 이야기 또한 이렇게 하느님께서 궁극적으로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놀라운 善을 이끌어내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교훈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고, 그러므로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끝내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함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때가 바로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한 때임을 명심하자, 온전한 믿음으로 희망을 곧게 세우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환난괴 시련의 "끝"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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