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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그의 이름이 뭐지?

by 大建 2015. 3. 5.

사순 제2 주간 목요일(루까 19,16-31)


오늘 복음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는 귀에 익은 복음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새로움을 던져 준다.
"왜 부자의 이름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왜?

이름이란 구체적인 한 개별적 존재를 규정짓는 말이다. 
흔히 인간은 이러한 개별적 존재로서 인격체라고들 한다.
그래서 상대방을 인격체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수인번호로 부른다고 하지 않는가!

인격체가 지니는 가장 큰 특성 중의 하나는 "관계성"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홀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는 자기 배 채우기에만 급급하여
타인과 관계맺기를 소홀히 하였다. 특히 주변에 굶주리고 있는 또 다른 인격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부자는 관계성을 상실하고 살아갔기에 인격체로서의 자질을 상실한 것이고
더불어서 이름조차 상실하고 익명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일상의 삶 속에서 과연 얼마나 이러한 관계성을 충실히 발휘하며 사는가? 
이웃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나 자신 안에 틀어밖혀 사는 존재는 온전한 인격체라고 할 수 없다.
나의 삶-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을 함께 나누며 살아갈 때,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며 관계성 안에서 인생을 영위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바로서의 옳바른 인격체가 되는 것이다.

남들이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고, 더우기 욕을 한다고 할 때 상대방을 탓하지 말자.
그것은 상대방이 나를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표시이며,
관계가 상실되었음을 드러내주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내가 인격을 손상시킬만한 어떤 행위를 했는지 반성해보고 관계성을 다시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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