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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평화의 정신 7

by 大建 2008.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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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화와 보편적 형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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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시의 프란치스꼬에게 있어서 평화와 형제애 사이에는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과, 자기 자신과 그리고 그 밖의 모든 피조물과의 인격적인 화해의 체험이 없이는 “참된 평화”가 불가능함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프란치스꼬의 글 안에서 평화를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형제애의 세 가지 차원: 공동체적 차원, 교회-사회적 차원 그리고 범우주적 차원을 발견할 수 있다. 
                                                                            
3.1. 공동체적 차원
                                                                            
프란치스꼬는 그의 유언에서, 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두 가지 만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니, 그 하나는 나병환자들과의 만남이요,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형제들과의 만남이다.

     “내가 죄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 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에는 역겨웠 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유언 1-3).

프란치스꼬도 당시 사람들이 나병환자들에게 가지고 있던 거부감과 멸시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주님 몸소 그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그는 깊은 동정심과 연민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나병환자들을 통해, 당시의 소외된 이들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세계와 새로운 관계 방식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 즉 나환자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는 내적 변화를 체험했으며 하느님의 권능을 체험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 안에 가장 가까이 계신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프란치스꼬는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세속을 떠났다”는 표현은 세상 도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 양식, 세상 안에서 다른 인간들과 함께 하는 다른 삶의 방법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프란치스꼬가 그의 전 존재를 통하여 체험한 또 다른 의미깊은 만남은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형제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주님이 몇몇 형제들을 나에게 주신 후 아무도 내가 해야 할 것을 나에게 보여 주지 않았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하셨습니다”(유언 14).

나병환자들과의 만남이 있은 후 몇년 후,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형제들과의 만남 안에서 그가 결정적으로 따르기로 결심한 생활 양식,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사는” 것을 발견하였다. 프란치스꼬의 유언 안에서 이 두 번째 만남은 1절부터 3절까지의 첫 번째 만남 이후의 기억에 대한 회상에 뒤이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점은 우리로 하여금 나병환자들과의 만남이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형제들과의 만남을 위하여 결정적이었음을 결론짓게 한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우리는 프란치스꼬가 나병환자들을 “크리스챤 형제들”이라고 부르고는 하였던 것(발자취 22)이 매우 당연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프란치스꼬가 그의 글들 안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있는 인간관계의 친교의 체험이 시작된 것은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형제들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이러한 형제적 관계의 새로운 체험은 시초부터 평화의 메시지의 선포와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씨시의 프란치스꼬에 의하면, 형제애의 근본 조건은 평등성과 상호 봉사의 행위 안에서의 “형제됨”이다. “아무도 장상이라고 부르지 말고 반대로 모두를 구별없이 작은 형제들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서로 발을 씻어 줄 것입니다”(1 회칙 6,3-4). 프란치스꼬에게는 형제가 되는 것으로는 족하지 않았다. “작은 형제”가 되어야만 했다.
중세의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이러한 평등성과 작음의 덕의 체험은 형제회 외부의 어떤 전기작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우르스뻬르그의 부르까르도는 자신이 기록한 연대기들 중의 하나에서, 당시 교회 안에서의 두 가지 쇄신 운동들-“겸손한 이들”과 “리용의 가난한 이들”-의 몇 가지 특징들을 기술한 다음에,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교황 성하께서는 이들을 인준하는 대신, 작은 가난한 이들이라고도 부르는 다른 이들을 인준하셨다. 이들은 앞서 말한 미신스러운 것들과 의심받을 만한 것들은 모두 멀리하였다… 이들 자신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대단한 겸손함의 명성이 허영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과, 거짓으로 가난을 지키던 자들에게 흔히 있었던 것처럼 가난을 이유로 하여 하느님 앞에서 자신들을 들어 높일 수 있는 위험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는 사도좌에 모든 것에 있어서 복종하면서 ‘작은 가난한 이들’이라고 불리기보다는 ‘작은 형제들’이라고 불리기를 더 원하였다”[각주:1].

“작은 가난한 이들”이라는 이름이 프란치스꼬가 추구하던 복음적 이상의 두 가지 근본적 요소들 즉 “가난”과 “작음의 덕”을 더 잘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작음의 덕”과 함께 “형제애”를 두드러지게 하는 “작은 형제들”이라는 명칭을 선호하였다.
성 프란치스꼬의 이러한 복음적 이상에 매료되어  순식간에 여러 출신의 사람들이 새로운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첼라노는 첫 형제들과 프란치스꼬와의 공동 생활을 이야기하면서, “열심하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고귀하든, 천하든, 멸시할 만한 사람이든, 사랑스럽든, 현명하든, 순수하든, 사제이든, 평신도이든, 문맹자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언제나 믿음을 지닌 사람이 성령의 인도로 찾아와서 거룩한 형제회의 수도복을 받아 입을 때마다 성 프란치스꼬와 형제들은 대단한 희열과 굉장한 기쁨을 갖곤 했다… 어떠한 천한 출생이나 어떠한 가난한 조건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완전한 사람으로 키우시는 일에 방해를 못하였으니,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버림받은 자들이나 소박한 마음을 지닌 자들과 더불어 즐거워하시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1 생애 31).
그러므로, 프란치스꼬의 “형제회”는 “하느님께서는 사람 차별을 않으신다”는 근본적인 사실로 말미암아 더욱 성장하게 되었다[각주:2].

한편, 프란치스꼬에게 있어서, 주님의 영에 의하여 북돋아진 “형제애”는 공동체 생활의 새로운 체험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성인의 독창성은 “상호성”을 형제회 존립의 원칙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프란치스꼬의 새로운 형제회에 대한 아이디어의 기발함은 특히 인준받지 않은 회칙 5장에서 그 빛을 발한다.
     “이와 같이 모든 형제들은 이 점에 있어서 특히 형제들 서로간에 어떤 권한이나 지배권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형제들 중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들의 봉사자와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들 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제일 낮은 사람처럼 처신해야 합니다. 어떤 형제도 다른 형제에게 악한 짓을 하거나 악한 말을 하지 말 것입니다. 오히려 사랑의 정신으로 자진해서 서로 봉사하고 순종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되고 거룩한 순종입니다”(1 회칙 5,9-15).

여기서 프란치스꼬는 형제회 안에서 명하는 형제와 순종하는 형제 사이의 관계를 “성령의 사랑의 충동에 의한 상호 봉사와 순종”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된 사랑이란 자기 자신의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전제로 한 서로의 정신과 마음의 일치인 것이다. 따라서 참된 형제애에 도달한 사람은 사랑의 순응성의 최고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순종을 실천한다. 그리고 이렇게 성부께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서로가 봉사하려고 노력하는 공동체에서는 봉사를 조직화하는 데 필요한 권위를 구하게 된다. 순종함으로써 한 형제는 다른 형제에게 봉사하며, 더 나아가 모든 이에게 자신을 개방하게 된다[각주:3]. 이러한 순종이야말로 “참되고 거룩한 순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새로운 형제회에 대해 언급하면서 첼라노는 “이러한 가운데에서 그들은 누구하고나 평화롭고 화기애애하게 지내도록 힘썼고, 신중하고 평화롭게 처신함으로써 모든 불미스러운 일들을 애써 피했다… 어떤 시기심도 악의도 그리고 원한이나 악담도, 아니면 의심이나 유감도 그들에게서는 머물 여지가 없었다. 다만 큰 화목과 지속적인 평온과 감사와 찬미의 소리만이 있었다”(1 생애 41: 번역판의 “끊임없는 침묵”은 “지속적인 평온”의 오역이다)고 전한다.

사실 두 회칙의 본문들에서 보면, 새로운 형제회의 창설자는 새로운 공동체 안에는 끊을 수 없는 형제적 고리들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형제적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아들이 자기 어머니를 신뢰하듯이(1 회칙 9,10-11; 2 회칙 6,7-9) 서로간에 자기의 생각, 계획, 문제 그리고 고통 등을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더 나아가 형제들은 서로 헐뜯거나 비방함이 없이(1 회칙 11,7-9) 서로 신뢰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온유하게 대해야 한다.

프란치스꼬는 형제회를 평화의 선포의 첫 번째 선물로 체험했다. 뀐따발레의 베르나르도는 이 선물을 받아들인 첫 형제였다. 첼라노는 그가 프란치스꼬의 제자로서 형제회에의 부르심을 받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 사람 다음에 베르나르도 형제가 평화의 사신의 사명을 다할 것을 수락한 다음 하늘나라를 획득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을 열심히 쫓아갔다”(1 생애 24). 그의 뒤를 이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형제들이 새로운 평화의 사신들의 공동체에 합류하기 위하여 복음에 따른 새로운 생활양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처럼 프란치스꼬인이 된다는 것과 평화 건설의 협력자가 된다는 것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1. Burcardo de Ursperg, Chronicon, en: J.A.Guerra, o.c., 962-963 [본문으로]
  2. 로마 2,11; K. Esser, La Orden Franciscana orígenes e ideales, Ed. Franciscana Aránzazu, 1976, 68; 이 문장에서 라틴어 “fraternitas”는 형제회를 의미할 수도 있고 형제애를 의미할 수도 있다. 즉 에쎄르는 형제회의 수적 발전과 더불어 프란치스꼬의 형제애의 성숙을 함께 뜻하고자  한 듯하다 [본문으로]
  3. L. Iriarte, Vocación franciscana, Ed. Asís(Valencia), 19893, 270; 같은 이, 프란치스칸 영성, 배   요셉 역, 계성출판사, 1990, 226-229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