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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

by 大建 2014. 11. 20.

연중 제33 주간 목요일(루까 19,41-44)


예수께서 오늘 복음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신 곳에는 성당이 들어서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예루살렘은, 예전 유다교 성전이 있던 자리에 자리잡은 회교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올리브 나무들이 있는 동산들을 배경으로 하는 참으로 고즈녁하며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오늘날 분쟁의 중심지가 되어 버렸다.
이스라엘-팔레스티나의 평화 협상의 걸림돌이 바로 예루살렘이지 않은가!
예수가 사시던 당시에도 예루살렘은 평화로운 이름과 풍경과는 달리
평화가 아닌 불신앙, 증오, 갈등, 착취, 분열로 가득한 도시였다.
먼저 유다인들에게 평화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믿는 신앙 보다는
율법과 제사만을 강조하는 종교적 행위들이 우세하였다.
또 유다인들은 정치적 속박의 상태 하에서 로마인들을 비롯한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증오하며
무력 혁명의 꿈을 키웠기에 긴장의 상태가 계속되었다.
유다 민족 내부에서도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에세네파 등 여러 종파들이 서로 반목을 하고,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갈등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워낙 인간의 아픔에 민감하셨던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내려다 보시며
온갖 상처와 분열로 가득한 그 도시의 모습에 얼마나 안타까움을 느끼셨으면
눈물을 흘리기 까지 하셨을까!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
당신 아버지의 도성, 평화의 도성 예루살렘이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고
"평화의 왕"으로 오신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음을 아파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새 예루살렘, 우리 교회를 바라 보고 계실 그리스도께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시리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교의(敎義)와 외적 형식만을 중요시 여기며 민중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고,
종파간 이기심으로 분열되어
"하나되게 하소서"하신 당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분열되어 반목하고 있는 그리스도교회,
종교의 차이를 빌미로 서로 살상하는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세상,
종교를 이념화하여 자신의 이익과 배치되면 교회의 가르침도 모른 체 하며                                                                                            예언자의 목소리를 헐뜯고 타인의 인권을 무시하며 교회를 분열시키는 사이비 신앙인들의 단체 등을 보시면                                             오늘날도 눈물을 흘리시며 한탄하시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이제는 그분의 눈에서 눈물, 피눈물을 우리가 씻어드려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평화의 길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하느님과, 이웃과, 나 자신과 화해하기로 하자.


예수께서는 평화의 길을 보여주시기 위해
불신과 불목, 증오와 착취가 가득 한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 한 가운데로 들어가셨다.
거기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셨지만... 


우리도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예루살렘 한 복판을 거쳐 골고타까지 가야 한다.
그것만이 허물어진 예루살렘의 폐허 위에 진정한 새 에루살렘을 건설하고
예수의 눈물을 씻어드리는 방법이다.

                                                                                                      (46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