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 주간 토요일(루까 18,1-8)
----------------------------------
처음 유학가서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참으로 참담하던 심정이었다.
그래도 중.고.대학교를 거쳐 오면서 어학에 있어서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자신감도 있었는데,
막상 살고 공부하기 위해서 배우는 말이 전혀 늘지 않는다는 불안감에서였다.
그럴 때마다 에스빠냐의 형제들은 "despacio, despacio!"(서두르지 말라)는 말을 되풀이하였다.
말 배우는 것이 그리 쉽겠느냐는 뜻이다.
사실 그렇다. 어린 아기들은 서두르지 않지만 조금씩, 조금씩 어른들의 말을 흉내내면서 말을 배워간다.
신자들과 기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묵주의 기도가 기도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 글이 필요 없을 것이다),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기도를 잘 안들어 주신다"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먼저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할 때 기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다.
어린아기들은 엄마와 대화하는 법을 따로 배우지는 않지만
"엄마", "나", "밥" 등 외마디 단어들을 배우고 차츰 문장을 연결시키는 법을 배우고,
그리고 "어머니, 저 배고파요"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도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세상의 그 어느 누가 처음부터 기도를 잘 할 수 있겠는가?
아기가 가장 신뢰하는 엄마에게서 외마디 소리부터 배우듯이 우리도 그러한 자세로 기도에 임해야 한다.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을 길러가며, 그분의 "말씀"을 단편적으로나마 이해하면서,
사랑을 터득해 나아갈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도는 되는 것이다.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대 데레사 성녀 같은 분도 기도가 무미건조하고 분심 때문에 14년을 고생했다고 하지 않는가!
항구심 외에 기도의 지름길은 없는 듯 싶다. "Despacio!"
자판기 문화와, 더군다나 요즈음 초고속 인터넷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은 이렇게 말하기 십상이다.
하느님의 뜻은 여쭤보지도 않고, 한 두 번,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간단히 청하는 기도를 바치고 나서 하는 말들이다.
우리 자신은 어떤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 심사숙고한다.
하물며, 우리 일생을 이끌어가시는 하느님은 어떠실까?
아마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결정을 내릴 시간도 드리지 않으면서 자판기에서 커피 뽑듯이 답을 요청하는 것은 아닐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의 말 속에 담겨 있는 의미, 우리 내심의 경향, 우리의 과거 등 우리의 모든 것을 종합, 분석하여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내려주시지 않겠는가!
그러한 그분과 우리가 합의를 이끌어 내려면 우리는 꾸준히 그분을 설득시켜야(?) 한다.
사심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인내심을 지니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화될 것이다.
하느님께 시간을 드리자.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열심히 말씀드리자. 기도드리자.
그러면 우리에게 정말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Despacio!"
(99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