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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침묵 속에 드러나는 사랑

by 大建 2009. 4. 10.

성 금요일 (요한 18,1-19,42)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날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상적인 전례력의 한 부분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겠지만,
모든 일에 의미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코끝이 찡 해지고, 가슴이 저미는 날일 수 있다.


수난당하시는 예수 곁에 우리가 있다면 우리는 하도 답답한 마음에 왜 그냥 당하고만 계시는가 하고
따지고라도 싶을 것이다.
마치 제자들처럼 칼로써 원수들을 쳐버리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대체적으로 침묵을 지키신다. 대사제와 율법학자들 앞에서도, 빌라도 앞에서도...
그리고 묵묵히 끌려가시고 갖가지 조롱에도 크게 대꾸를 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이런 경우에 침묵을 지킬 때는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이고, 또 다른 경우는 자포자기한 상태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금이라도 반항할 수 있는 기력이 남아 있을 때에
우리는 상대방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꼬박꼬박 대꾸를 하지 않는가?
조금이라도 상처가 되는 말,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을 대는 같은 종류의 말로 응수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두고 두고 그 말을 되씹으며 멋지게 앙갚음할 날을 기다리며 혀를 벼린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신다.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혀서도 아니요, 완전히 기진한 상태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기다리시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자신은 길은 성부께서 마련하셨음을 보았기에 온전히 의탁하는 마음으로 침묵을 지키신다.
고통이야 이루 말로 할 수 없었겠지만,
또 배신감에 치를 떨으셨을 수도 있지만,

오로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우리 죄인들이 당신에게 행한 일에 대해 올바른 의미를 깨닫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러한 침묵이 필요하지 않을까?
오해나 모욕을 받았을 때,
내가 떳떳하다면 나는 더 이상 대꾸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아버지께서 나의 삶을 이끌어 가심에 신뢰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말에 "세월이 약이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그리스도적인 의미는 바로 하느님께의 절대적인 신뢰이다.


오늘 침묵을 살아가기로 하자.
침묵 안에서 아버지께 사랑을 드리는 법을 배우자.
침묵을 지키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 아들의 죽음 앞에서 침묵하시며 오로지 함께 하고 계심을 보여주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내 삶 속에서도 함께 하고 계심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침묵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내 안에서 새롭게 부활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