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 후 토요일(요한 3,22-30)
1. 무주리조트 입구에는 식당촌이 있다. 그런데 여기 식당들은 한결같이 전주집이거나 전주식당이다. "전주집", "진짜전주식당", ""원조전주식당", "참전주집"... 이런 식이다. 이름에서부터 식상하여, 특별한 집은 없겠거니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해장국집으로 유명한 양평에는 "한국에서 두번째로 맛있는 해장국집"이라는 간판을 건 식당이 있다. 두번째로 맛있는 집의 음식은 어떨까 하고 궁금하게 되고 가서 첫번째집은 어떤 집인지 물어보고 싶어지게 하는 간판이다.
2. 조만간 다시 청문회가 열릴 듯 하다. 이번에도 국민들 울화통만 터지게 하는 청문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 비슷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의 청문회에 나온 인간들은 도대체가 물러날 줄 모르는 인간들이었다. 거짓으로 변명을 늘어놓으며 버티다가 결국 온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고 지탄을 받고서야 물러난 인간들이 많다. 물러나야 함을 모르고, 물러날 때를 모르면 그렇게 망신을 당하게 된다.
3.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물러나야 함을, 물러날 때를 알았던 사람이다.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할 줄 알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겸손되이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고 말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를 원한다. 참으로 겸손한 인물이다.
4. 우리는 어떤가? 세상 안에서 조금이라도 나를 드러내고자 하며 남을 깍아내리고, 내가 올라서고자 타인을 무자비하게 짓누른다. 이러한 삶 안에 하느님께서 들어서실 여지가 없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아니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살아간다. 교회 안에서도 조금만 봉사를 하면, 봉사를 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기 보다는 생색내기 일수이다.
모름지기 신앙인은 겸손해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내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을 수가 있다.
5. 오늘 제1독서에서 요한 사도가 말씀하시는 것도 같은 내용이 아닌가 싶다.
모든 죄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느님을 거스르는 사람은 그분께 겸손되이 용서를 청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겸손되이 뉘우치면 아무리 많은 죄라도, 아무리 큰 죄라도 용서해주시는 분이시다. 언제든지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는 분이시다.
우리는 타인이 잘못했을 때, 그를 용서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며, 미움을 담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참 심판관이신 하느님, 용서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도외시 하고, 오히려 그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키우고 하느님을 작게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사도는 "형제가 죄를 지을 때" 그를 위해서 용서의 하느님께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내가 작아지고 그분이 커지시게 된다.
0. 겸손은 우리 신앙의 기본이요, 바탕이다. 겸손하게 살아갈 때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모시고 살 수 있다.
1. 무주리조트 입구에는 식당촌이 있다. 그런데 여기 식당들은 한결같이 전주집이거나 전주식당이다. "전주집", "진짜전주식당", ""원조전주식당", "참전주집"... 이런 식이다. 이름에서부터 식상하여, 특별한 집은 없겠거니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해장국집으로 유명한 양평에는 "한국에서 두번째로 맛있는 해장국집"이라는 간판을 건 식당이 있다. 두번째로 맛있는 집의 음식은 어떨까 하고 궁금하게 되고 가서 첫번째집은 어떤 집인지 물어보고 싶어지게 하는 간판이다.
2. 조만간 다시 청문회가 열릴 듯 하다. 이번에도 국민들 울화통만 터지게 하는 청문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 비슷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의 청문회에 나온 인간들은 도대체가 물러날 줄 모르는 인간들이었다. 거짓으로 변명을 늘어놓으며 버티다가 결국 온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고 지탄을 받고서야 물러난 인간들이 많다. 물러나야 함을 모르고, 물러날 때를 모르면 그렇게 망신을 당하게 된다.
3.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물러나야 함을, 물러날 때를 알았던 사람이다.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할 줄 알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겸손되이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고 말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를 원한다. 참으로 겸손한 인물이다.
4. 우리는 어떤가? 세상 안에서 조금이라도 나를 드러내고자 하며 남을 깍아내리고, 내가 올라서고자 타인을 무자비하게 짓누른다. 이러한 삶 안에 하느님께서 들어서실 여지가 없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아니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살아간다. 교회 안에서도 조금만 봉사를 하면, 봉사를 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기 보다는 생색내기 일수이다.
모름지기 신앙인은 겸손해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내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을 수가 있다.
5. 오늘 제1독서에서 요한 사도가 말씀하시는 것도 같은 내용이 아닌가 싶다.
모든 죄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느님을 거스르는 사람은 그분께 겸손되이 용서를 청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겸손되이 뉘우치면 아무리 많은 죄라도, 아무리 큰 죄라도 용서해주시는 분이시다. 언제든지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는 분이시다.
우리는 타인이 잘못했을 때, 그를 용서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며, 미움을 담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참 심판관이신 하느님, 용서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도외시 하고, 오히려 그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키우고 하느님을 작게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사도는 "형제가 죄를 지을 때" 그를 위해서 용서의 하느님께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내가 작아지고 그분이 커지시게 된다.
0. 겸손은 우리 신앙의 기본이요, 바탕이다. 겸손하게 살아갈 때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모시고 살 수 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 그리워지는 시대이다.
(1J1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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