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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한은 조선 순조 때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사옥 때 백서를 작성한 황사영 알렉시오와 정난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났다.
황사영은 1790년 약관 16세 나이로 사마시에 진사로 급제한 인재로서 당시 명문가문인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딸 정난주와 결혼했으나 신유사옥 때 핵심 주모자도 지목돼 1801년 11월 5일 대역부도 죄를 저지른 중죄인으로 분류돼 순교했다.
정난주는 제주 대정현의 관노로 유배되던 중 당시 2살이던 아들 황경한을 추자도 예초리 해안가에 내려두고 떠났고, 예초리 주민 오씨 부인이 울고 있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
정난주는 제주에서 관노로 37년간 인욕의 세월을 살면서 늘 아들을 그리워하다 1838년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은 자신의 내력을 알고 난 후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제주에서 고깃배가 들어오면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봤다고 전해진다.
황경한의 묘는 추자면 예초리 남쪽 신대산에 있다. 그 아래쪽 해안에는 눈물의 십자가와 아기상이 설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