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팔일 축제 내 제7일(요한 1,1-18)
세월이 쏜살같다는 말은 너무 상투적이고 부족한듯이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나라 안팎으로 정말 다사다난했던 2008년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역시 매년 되풀이되듯이
보다 열심히, 보다 전투적으로 복음을 살아가지 못했음에 가슴을 쳐보는 회한의 시간을 가지게 되지만
이 또한 각본에 나와 있는대로 매년 반복하는 연기인 것 같으니 더욱 답답하다.
오늘, 2008년의 마지막 날 복음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고 장엄하게 선포하고 있다.
즉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가운데 생활하신 하느님의 말씀이었다.
이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이사야 예언자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은 틀림이 없다. 내 말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고야 만다"고 전한다(45,23).
사실 하느님의 말씀이 "빛이 생겨라" 하시자 곧 빛이 생겼고,
그 외의 모든 것도 그분의 말씀 한 마디에 "그대로" 창조되었다고 하지 않는가(창세 1장)!
그러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서 사셨다, 즉 우리와 함께 생활하셨다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셨다면 왜 우리는 한해를 보내는 이 시간에 이 처럼 우울하게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그분이 올 한해 동안 일어났던 온갖 비참하고 끔찍한 사건, 사고들을 막으실 수는 없었다는 말인가?
그분이 우리의 삶을 보다 잘 이끄실 수 없었다는 말인가?
매년 연말에는 가슴만 치면서 후회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인가?
우리가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 보는 반성을 할 때 놓치기 쉬운 것이 하나 있다.
즉 아쉬운 점, 부족했던 점 등에 대해서는 쉽게 떠올리면서도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 준 일에 대해서는 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2008년 한 해에 우리는 죄만 짓고 살아 왔는가? 우리는 그러한 태도에서 전혀 변화가 없는 삶을 살았다는 말인가?
한 해 동안 기쁜 일은 없었는가? 감사드릴 일이 전혀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무수히 많은 감사드릴 일이 있을 것이다.
죄를 아파하면서도 변화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지불식간에 변화되는 등
우리가 알지 못하게 일어 난 선(善)도 우리 삶 안에 많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모두 모든 선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죄인일지라도 그분의 선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삶 속에서는 창조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내가 그것을 거부하고 인정치 않으며 내 욕심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매년 연말에 우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지금 세계는 미국발 신용 위기 경색으로 인한 심한 경기 침체와 불황으로 모두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어난 저 일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우리가 재화 획득과 그를 위한 경쟁, 투쟁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자본주의 체제를 버리려 하지 않고,
2mb와 그 졸개들은 무작정 사회의 모든 면에 있어서
인간보다는 경제 위주로 무한 경쟁 체제로 밀고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께서 선을 행하시지 않고 악을 방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제 욕심만 채우려 하고 창조주이신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기에 세상에는 악이 만연하고 불행이 계속되는 것이다.
각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내 바램만을 이루려고 노력하기에 우리는 매년 연말에 가슴을 쳐야 하는 것이다.
이제 새해에는 세상에서, 내 안에서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살자.
아니 이미 내 삶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분의 "말씀"을 겸손되이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분은 비록 어두움 속에서 우리가 잘 깨닫지는 못하지만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시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말씀이신 그리스도,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드리며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면
2009년 마지막 날에는 오늘보다는 더 기쁘게 한 해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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