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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사랑의 십자가 승리하리

by 大建 2011. 9. 14.
성 십자가 현양 축일(요한 3,13-17)


오늘은 "거룩한”(聖) 십자가의 현양 축일이다.

십자가는 절대 거룩한 것이 아니다. 거룩하기는커녕 죄인들을 매달던 죽음의 형틀이었으며, 따라서  인간이면 누구나 끔찍하게 생각하는 저주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저주스런 것이 거룩한 것으로 바뀌었는가? 어떻게 저주스러운 것이 거룩한 것으로 들어높임을 받게 되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매달리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매달리셨기 때문이다. 당신 생명을 온전히 바쳐 드러내고자 한 하느님 사랑이 그 십자가에 달렸기 때문이다. 인간이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을 당신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자신을 내어맡길 때 우리가 죄와 죽음도 이기고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 안에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하고 아우성쳤지만, 그분은 그러한, 비웃음과 유혹을 이겨내셨다. 우리도 이런 조롱과 유혹의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테 16,24)는 예수님의 요청을 들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이 따른다.  불행이 온다든가 자신의 신체에 고장이 났다든가 또는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든가 사업에 실패했다든가 등등 우리가 좌절을 경험할 때 오히려 그것이 성숙의 기회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이 잘 되어 갈 때는 비교적 신앙을 지탱해 나가기가 쉽다. 그러나 자기 생각대로 되어 가지 않을 때, 그 때에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의 여부가 신앙을 가름하는 하나의 시금석인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 활동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매일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면서도, 어느새 자신 안에 자기의 의지나 뜻이 자리를 잡고 나름대로의 주판을 놓는다.  어떻게든 자기 생각대로 잘 되어가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결국 자기의 명예라든가 자기 실현이라든가 하는 것을 제일 소중하게 여긴다.  이것이 세속의 가치관인 것이다.  그런 것이 어느새 자신의 마음을 좌우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박탈되고 산산이 부서질 때, 실패했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을 원망한다.  이처럼 실망하거나 원망하는 것은 어느새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자기의 형편만을 생각하는 데서 오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의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은 오히려 자기가 막다른 골목에 부딪쳐서 자기로서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때가 아닐까?  설령 인간의 눈에는 헛되게 보이고 모든 것이 헛수고로 끝난 것처럼 생각되어도 만일 자신의 무력함을 알고, 그 무력함 속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느님 대전에서는 고귀한 것이라는 것, 자기가 열심히 일을 해서 자기 만족에 빠져 하느님의 뜻을 잊어버리고 있는 때보다 훨씬 고귀하다는 것, 그것이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제시된 그리스도교적인 가치관인 것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단순하게 인간의 삶에서 오는 힘든 일들이나 어려운 사람들과 만날 때 견디어 내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분께서 당하신 수치와 고난과 죽음을 함께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자아를 죽이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순간을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질 때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된다. 아무리 유익한 삶을 살고 성취감을 느끼고 살지라도 삶에서 십자가를 살아내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열매없이 무익하게 살아가는 것과 같다(요한 12,24-25).

이제 우리도 자기 의지대로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살기 보다,  하느님의 구원의 뜻을 따라 사랑과 희생에의 삶으로 나아가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도록 투신해야 할 것이다.  마지 못해서 하는 태도로 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 자극되어 몸을 바쳐 해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사랑에 불리웠음을 감사하면서 나와 이웃의 희망과 승리의 상징으로 십자가를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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