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 주간 화요일(마테 18,12-14)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또 되찾기도 하였지만, 재작년에 도둑맞았던 휴대용 하드디스크, 특히 그 안에 저장해 놓았던 사진들은 아직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미 마음을 비우고 있지만 그래도 비슷한 사진을 찍거나 할 때 문득문득 생각나기도 한다. 그 동안 작업했던 여러 문서들은 다행히도 백업(별도 저장)본을 찾았기에 큰 문제가 없지만 HDD 분실 전 몇년 동안 찍은 사진들은 백업을 해놓지 않았기에 고스란히 사라져 버렸다. 그중에는 정말 아까운 사진들이 많았다. 장성 수도원에서의 설경이라든지, 노린재 알의 부화라든지... 정말 심혈을 기울여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 원본이 중요한 것은 똑같은 사진을 결코 찍을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내 인생의 한 순간이 사라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느님 보시기에는 소중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각자가 하느님 닮은 모습(模像)으로 창조되었으며, 각자가 고유한 인격을 지니는, 그래서 누구나 천부적인 존엄성을 지니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각 인격체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동일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로마 2,11).
그렇게 사랑해주시는 한 영혼이 당신의 품, 당신의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겪으실 아픔은 따라서 아흔아홉의 영혼이 무사한 것으로 위로가 될 수 없는 성격임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인간도 자식과 관련하여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가!
하느님의 사랑이 그러한 것일진대 우리는 세파에 시달리면서, 그리고 이웃들에게서 상처를 입고, 모욕을 당할 때도 그분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가 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예언자가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하고 외치는 까닭이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이사 40,11).
아버지이요, 목자이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그러한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안으시고 우리 각자를 찾으러 오시는 주님께 달려나가기로 하자. 이제는 목자가 이끄는 길을 벗어나 방황하는 일이 없이 그분 품안에서만 위로를 찾기로 하자.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또 되찾기도 하였지만, 재작년에 도둑맞았던 휴대용 하드디스크, 특히 그 안에 저장해 놓았던 사진들은 아직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미 마음을 비우고 있지만 그래도 비슷한 사진을 찍거나 할 때 문득문득 생각나기도 한다. 그 동안 작업했던 여러 문서들은 다행히도 백업(별도 저장)본을 찾았기에 큰 문제가 없지만 HDD 분실 전 몇년 동안 찍은 사진들은 백업을 해놓지 않았기에 고스란히 사라져 버렸다. 그중에는 정말 아까운 사진들이 많았다. 장성 수도원에서의 설경이라든지, 노린재 알의 부화라든지... 정말 심혈을 기울여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 원본이 중요한 것은 똑같은 사진을 결코 찍을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내 인생의 한 순간이 사라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느님 보시기에는 소중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각자가 하느님 닮은 모습(模像)으로 창조되었으며, 각자가 고유한 인격을 지니는, 그래서 누구나 천부적인 존엄성을 지니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각 인격체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동일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로마 2,11).
그렇게 사랑해주시는 한 영혼이 당신의 품, 당신의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겪으실 아픔은 따라서 아흔아홉의 영혼이 무사한 것으로 위로가 될 수 없는 성격임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인간도 자식과 관련하여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가!
하느님의 사랑이 그러한 것일진대 우리는 세파에 시달리면서, 그리고 이웃들에게서 상처를 입고, 모욕을 당할 때도 그분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가 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예언자가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하고 외치는 까닭이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이사 40,11).
아버지이요, 목자이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그러한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안으시고 우리 각자를 찾으러 오시는 주님께 달려나가기로 하자. 이제는 목자가 이끄는 길을 벗어나 방황하는 일이 없이 그분 품안에서만 위로를 찾기로 하자.
그리고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 하시는 것과 똑같은 사랑으로 사랑해주시는 나의 이웃에게 내가 상처를 주어, 내가 동료 양을 주님의 울타리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일이 없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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