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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처럼 눈이 오면 즐거워 뛰놀거나 할 것이 아니면서도
올해는 눈이 많이 기다려졌다.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리고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한 마음을 많은 사람들 앞에 선 자리에서 전하였더니 그 순진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다음 날 눈이 소복히 쌓일 정도로 많이 왔다.
그러나 정작 내 마음은 미처 눈으로 덮이지 않은 가지가 어둡게 드러나는 것처럼 부끄러움을 느낀다.
저 흰 눈은 세상을 덮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을 덮어야 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길가는 여인네는 자칫 넘어질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