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 주간 목요일(마테 7,7-12)
구약성서의 토빗기에서는 토빗이 아들 토비야에게 유언을 하면서 “네가 싫어하는 일은 아무에게도 하지 마라”(4,15) 하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하고 말씀하신다.
공자의 "논어" 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자인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스승님, 인간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을 한 마디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공자는 망설임없이 "너의 마음을 상대방의 마음과 같게 하여라(其恕乎).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마라(己所不辱 勿施於人)." 라고 대답한다(논어,위령공23). 남의 마음을 헤아리기를 내 마음을 헤아리듯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이 황금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이 상대방에게 바라는 바가 있고, 또 상대방이 자신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내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바를 생각해서 상대방에게 그것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그것이 내가 하기 싫은 것일지라도 내 행동의 반대급부로 내게 돌아올 것을 생각하면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더러 그러한 것을 희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서 이득을 취하기만을 바랄 뿐, 다른 이들에게 좋을 일을 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해를 끼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이들은 대부분 인간 관계에 실패하고 외톨이로서 살아가며, 신앙 조차도 이런 이들에게는 한낮 장식품일 따름으로 결국 그러한 사람들은 실패하는 인생을 살게 마련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즉, 이것이 하느님의 계명이라는 말씀이시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하루 생활 중 만나게 되는 모든 이웃, 특히 어려움 중에 있는 이웃들을 이렇게 사랑하도록 하자. 우리가 그의 상황에 처해있다고 가정하고 그의 자리에서 남들이 우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그에게 해 주도록 하자. 이것이 참된 연민, 동정심(sympathia = sym + pathos)이요, 참된 자비(misericordia = miseria + cor)인 것이다. 복음서에서 자주 말하는대로 주님께서 당시 사람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뜻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내게 시련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우리가 그러한 사랑을 행함으로서 우리는 한 인간의 마음을 얻게 되는 것이고, 또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므로 동시에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자녀도 되는 것이다.
뱀다리 : 우리는 주님께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하는 이 말씀을 왜 기도에 관한 말씀에 이어서 하셨는지 깊이 묵상해볼 필요가 있다. 신앙은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맺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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