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탄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눈이 오기는커녕 날씨가 겨울 날씨답지 않게 푸근합니다만 제가 영세받기 전의19xx년 성탄절에 눈이 무척이나 많이 왔습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White Christmas였습니다. 어떻게 연도를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하느냐구요? 그것은 그해 성탄절에 저는 어떤 아가씨와 눈이 소복히 쌓이는 어린이 대공원에서 데이트를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부질 없는 일입니다만 그 때만 해도 왜 그리 마음이 황홀하던지... 그러나 지금 제가 쓸데없이 지난날의 연애 이야기나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영세를 받고 나서의 성탄절에 저는 곁에 저를 사랑하는 어여쁜 아가씨가 없어도, 또 함박눈이 내리지 않아도 여전히 기쁘고 행복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기에 서두를 그렇게 꺼내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매년 성탄절을 기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오늘이, 우리를 구하시러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의 생일이고 그러한 탄생 사건이 지난 2000년 전에만이 아닌 오늘도 반복되고 있고 그분이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며 또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아담이 범죄한 이후 항상 인간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래서 구세주를 보내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예언자들로 하여금 구세주 오심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탄생하실 당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의 격차를 막론하고 메시아, 구세주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하느님과 그분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뚜렷한 기약도 없이 기다려야 하는 마음은 기다려 보신 분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구세주께서 이 땅에 실제로 태어나셨을 때에 그분을 제일 먼저 뵐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 당시의 가장 비천한 계층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양치는 목동들이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당신이 태어나실 곳으로 가장 비참한 곳을 선택하셨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요. 사정이 이렇게 되다보니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분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을 구원해주실 메시아가 처녀의 몸에서 그것도 말구유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없었던 것이지요.
여기에 바로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지극히 자비하신 하느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당신 전능하신 힘으로 구하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하심으로 구하시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가장 비천한 이들로부터 맨 처음 경배 받기를 원하셨으며 그들의 순진한 마음만이 당신의 위대하신 손길을 알아볼 수 있음을 미리 생각하신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심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먼저 사랑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비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시는 것도 황송한 데, 그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곳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먼저 드러내 보이시는 이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성탄절에 눈이 오지 않아도 또는 사랑하는 연인이 옆에 없어도 기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온전히 비우시고 우리 곁에 오셨음을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성탄절만 되면 세상이 온통 축제 분위기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이 갖는 의미를 모른 채 그냥 들떠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인 우리는 왜 성탄을 기뻐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수 천년 동안 기다려온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직접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탄이 기쁜 축제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오늘 강생하신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이시오 참 사람이신 분입니다. 사람 가운데 계신 하느님, 사람들 보다 더욱 사람다우신 사람,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참 사람을 일컬어 바오로 사도는 “새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옛 사람 즉 죄로 인하여 일그러진 우리의 모습을 새로이 하기 위하여 오신 참 “하느님의 모상, 형상”(골로 1,15)이신 분이 바로 새 사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러한 분이 우리 가운데 오셨기에 우리는 죄에 얼룩진 이 세상, 아니 우리 자신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롭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시고 우리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분이 바로 오늘 강생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과연 아기 예수님의 거룩한 탄생을 맞으면서 그분께 무엇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잘못된 기대는 실망을 낳을 뿐입니다. 우리는 성탄을 맞으면서 먼저 우리 자신이 변화되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에서 미움과 질투, 교만과 분노 등을 몰아내고 우리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차게 해야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변화 없이 성탄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달리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성탄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잔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찬다면 우리는 항상 매일의 삶 속에서 성탄을 맞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예수님께서 항상 새롭게 탄생하시게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게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서 태어나시게 하려면 온갖 잘못된 욕심을 버리고 우리의 마음을 가난하게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제 막 2009년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기 위한 순간에 있습니다. 우리가 강생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우리 자신 오직 사랑으로만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인간의 모습으로 탄생하신 하느님께 온 마음을 다하여 찬미와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우리도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우리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특히 이 시대의 가난하고 외롭고 소외된 이들에게 먼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탄생하실 수 있도록 하십시다. 오늘도 하느님은 우리를 통하여 사랑의 역사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을 전해주고 계십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이에게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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