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제 수품 때 "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히브 10,5). 라는 말씀을 택하여 제 상본에 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께 그것을 바라셨듯이 제가 다른 아무 것도 아닌 참된 인간으로 살기를 바라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강론을 준비하면서 지난 사제의 여정, 인생 여정을 되돌이켜 보니 정말 부끄러움만 가득 드는 마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그저 단순한 참 인간으로 살기를 바라셨는데, 나는 계속 무엇인가 되려고 발버둥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모든 사제들이 수품식 때 지녔던 그 순수하고 뜨거웠던 열정으로 착한 목자이신 그분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예수 성심은 비단 사제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기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마음을 본받아 살게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그 예수님의 마음에 대해 바오로 사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십니다. "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 2,5-8)
참으로 인간다운 삶은 온전히 아버지 뜻에 따르려는 삶이고, 죽기까지 이를 실행하는 것이라는 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러한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그 사실을 확인하느라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초대교회는 이것을 목마른 사람에게 흘러넘치도록 주시는 영원한 생명수이며, 그래서 세례성사를, 그리고 흘러나온 피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먹고 마셔야 하는 성체성사의 상징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모두를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의 샘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성체성사만큼 잘 말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에 크게 감동하여 사셨던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하신 그분의 사랑을 한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첼라노 제 2생애 196항). 그리고 " 주여,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에 황송하옵게도 당신이 죽으셨으니,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 때문에 나도 죽을 수 있도록, 당신 사랑의 불과도 같고 꿀과도 같은 힘으로 내 마음을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에서 빼내어 차지하소서." (Absorbeat 기도문)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참다운 인간으로 살고자 한다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아버지께 온전히 종속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리 하셨듯이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에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삶, 그분의 사랑 안에 녹아드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도 성체가 되어 하느님께 봉헌되며, 동시에 이웃들에게는 먹거리가 되는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성체성사 안에서 자기 비움(Kenosis)의 절정을 보여주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본받아 우리도 참 인간답게 그렇게 살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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