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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네가 날 알아?

by 大建 2008. 3. 1.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사진에서 대화하는 사람들은 글의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 ^^

사순 제3 주간 토요일

얼마 전에 모 장관후보로 지명되었던 사람이 땅 투기가  문제가 되자
해명을 한 말이 더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자기는 땅 투기를 한 것이 아니고 땅을 원래 사랑하기에 그 땅을 샀던 것이란다.
지나가던 강아지(?)가 웃을 말이 아니겠는가!
결국 이 후보자는 사퇴를 하고 말았고
이 사람의 신용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자기가 산 땅에 고이 묻어주길 바란다! --)

이렇게 공적으로 한 말은 그저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평을 세상에 남길 뿐이다.
그러나 개인간에 하는 대화에 문제가 생기면 관계가 단절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대화는 진실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과 만나서
"나는 평생 거짓말도 안하고 아무런 죄도 짓지 않고 살아간다"고 말한다고 하자. 
혹자는 내가 신부요, 수도자라는 사실 때문에 믿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와 같이 사는 사람들은 결코 그러한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잘 아는 사람 앞에서조차 그런 거짓말을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상대방이 내가 말하는 부분에 대해 모른다고 무시해 버리는 것이요,
또 다른 가능한 이유는 자기 도취에 빠져 상대방을 망각한 채 말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어떤 이유가 되었든지 이런 경우에 진실한 대화는 불가능하고
심한 경우에는 관계마저 깨어질 수도 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대화의 상대를 올바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것이다.
기도란 하느님과의 대화이다.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 앞에서 자기를 들어높인다.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예수께서는 오히려 세리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으셨다고 말씀하신다.

기도-하느님과의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겸손이란 "진리 안에서 거니는 것"이기 대문이다.
나의 죄와 부족함을 솔직하게 고백할 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나의 겸손을 보시고
나를 대화 상대로 받아들여주실 것이다.

                                                                                (86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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