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대축일(요한 20,19-23)
성령께서 이 세상에 강림하신 사건을 다루고 있는 사도 2,1-11의 이야기는
특별한 현상들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
세찬 바람, 혀 같은 불길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현상은 이제까지 상상만 했던, 기다렸던 꿈의 실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하느님의 전능과 위대함 그리고 새로운 창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세찬 바람은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지나간 것, 더러운 것, 때묻은 것 등 모든 것을 싹 쓸어버리고 그곳에 새로운 세상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혀 같은 불길이 각 사람 위에 내렸다. 혀는 말씀의 상징이다.
말씀은 바로 하느님의 표현으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한 힘이다.
이 말씀이 모든 이들 가슴속에 깊이 스며들어 내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열정이 북받치는 뜨거운 마음으로 진실을 증언하게 된다.
혀같은 불길은 언어의 불통으로 생기는 온갖 불목과 분열을 태워버리고
모두가 통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 곧 사랑을 뜻하는 것이다.
그 옛날 인간 스스로 큰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오만한 마음을 지녔을 때
하느님을 떠난 인간들이 세운 바벨탑은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오만함 때문에 인간은 서로 언어가 갈리고 불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옛 잘못, 옛 상처, 옛 아픔이 이제 사랑의 불길로 치유되며,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강림을 새 창조라고 부르고 있다.
이 은총을 힘입어 사도들은 이상한 언어로 말하며,
그곳에 있던 모였던 여러 지역의 사람들은 각기 자기네 말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성령은 이와 같이 지역, 문화, 언어의 벽을 깨고 모든 이를 상통시키며 서로 하나가 되도록 이끄신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일치의 성령이라고 부른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 모두가 한 성령으로 한 지체가 되었으나 각기 받은 은사가 다른 것은
"하느님의 교회 안에서" 맡은 은사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모두가 다 사도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다 가르치는 사람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다 기적을 행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다 병고치는 능력을 받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다 이상한 언어를 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1고린 12,27-30)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어떻게 결론을 내리고 있는지 정말 잘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더 큰 은총의 선물을 간절히 구하십시오"(12,31).
과연 그 더 큰 은총의 선물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우리가 성서를 계속해서 읽어 볼 때 쉽게 알 수 있다.
더 큰 은총의 선물을 구하라는 권고에 곧 이어서 바오로 사도는 그 유명한 13 장을 시작한다.
"내가 이제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바오로는
사랑의 은사, 사랑의 은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이상한 언어)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1고린 13,1-2).
그렇다. 성령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실 수 있다.
그러나 그 은사들의 목적은 사랑의 일치를 이루게 하기 위한 것이다.
교회 공동체가 서로 일치를 이루게 하기 위한 것이요
또 서로가 사랑하며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치유의 은사나 이상한 언어의 은사를 간절히 구한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사랑이 없으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상한 언어를 말한다고 하면서
가족들에게 봉사하지 못하고 밖으로만 나돌아 가정 안에 불화를 일으킨다면
그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겠는가?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그래서 봉사한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분열을 일으킨다면
과연 그 사람이 성령의 도구이겠는가?
그 어떤 은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사랑을 지니지 못하고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다면
그 사람은 성령 안에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성령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도록 하는 하느님,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오로 사도는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들의 가장 첫 자리에
사랑을 꼽고 있는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이 진정 성령을 받았는가, 성령에 의해 사는가 하는 표지는
그 사람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인가 여부에 따라 드러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여러분들에게 가장 큰 은사를 주시기를 원하고 계신다.
다른 조그맣고 이상한 은사에만 매달리지 말자.
우리가 사랑으로 벌겋게 달아오를 때
우리는 세상도 변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힘을, 엄청난 선물을, 엄청난 은사를 받았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진정 성령과 함께 사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먼저 우리 가정 안에서, 우리 공동체, 우리 본당, 우리 동네 안에서
나를 태워 가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보여주자.
그때서야 우리 가족, 우리 이웃들은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우리의 말과 행동들까지도
모두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일치시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성령의 불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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