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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

사순절

by 大建 2012. 2. 22.
사순절(四旬節)/사순시기(四旬時期) [라] Quadragesima [영] Lent

사순절의 의미

 
 "이제라도 진심으로 뉘우쳐 나에게 돌아오라. 단식하며 가슴을 치고 울어라. 옷만 찢지 말고 심장을 찢고 너의 하느님 야훼께 돌아오라"(요엘 2, 12-13).

 
사순절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 전 40일간을 뜻하며 예수 부활을 잘 맞이하기 위해 참회와 보속으로 준비하는 기간을 말한다.

성서에는 이 40이라는 숫자가 많이 나오는데, 40이라는 숫자는 인간이 하느님의 일을 위해 특별히 재를 지키며 준비하는 기간으로 나온다. 이것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나이 산에서 40일간 재를 지켰고, 엘리야도 40일간 호렙 산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았으며, 특히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시며 재를 지키신 데서 유래한 것이다.


1. 인간의 근본을 생각하게 해주는 사순절

이러한 사순절의 첫날인 '재의 수요일'에 우리는 머리에 재를 받고 "사람아,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창세 3, 19)는 말씀을 듣는다. 사순절을 맞이할 때마다 교회 전례에서는 '사람은 흙이며,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평소 일상 생활에서는 별로 느끼지도 못하고 생각하기도 싫어하는 이 진리를 사순절에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깨우쳐 주는 것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흙이며,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순절은 사람의 근본적 본성을 알게 하며, 이 현세적 삶을 반성하고 또 이 현세적 삶에 의미를 주는 시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순절은 괴롭고 고된 고행의 시기가 아니라, 인간의 참모습을 발견케 하는 자아 발견의 시기이며 은총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결국엔 흙으로 돌아가야 할 존재임을 생각하고, 이제까지 우리가 자기 중심적인 생활을 해 왔다면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또 생활의 목표를 지상의 것에서만 두지 말고 미래에 긍극적으로 이루어질 천상적 생활로 바꾸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2. 사순절에 회개하는 이들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은총

하느님께서는 사순절 동안 특히 회개하고 참회하는 죄인들에게 당신의 은총과 평화와 용서와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이 주는 현세적이고 일시적인 만족에서 벗어나 참된 하느님께로 돌아오고 당신을 섬기라고 간곡히 말씀하신다. 요엘서의 말씀을 생각해 보자. "이제라도 진심으로 뉘우쳐 나에게 돌아오라. 단식하며 가슴을 치고 울어라. 옷만 찢지 말고 심장을 찢고 너의 하느님 야훼께 돌아오라"(2, 12-13). 즉 이제까지 하느님도 잊어버리고 세상 일에만 몰두하고 세속적인 생활만을 해 온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구원의 기회를 주시는 말씀이다. 이러한 참회와 반성의 시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며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제라도 진심으로 뉘우쳐 나에게 돌아오라."(요엘 2, 12)는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도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자비를 베풀만 할 때에 네 말을 들어 주었고 너를 구원해야 할 날에 너를 도와 주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고린 6, 1-2).

사순절에 들려주는 하느님의 이러한 말씀들은 인간들로 하여금 근본적으로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촉구하는 말씀들이다. 그리고 사순절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좋은 시간이다.

사순 제1주에 들려주는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사탄이 주려 하는 빵과 권세와 기적을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치는 모범을 보여 주신다. 세속적인 세력이 주는 것은 현세적이며 일시적이고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이 있기에 보다 영원한 것에 희망을 둔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능력과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 근거를 두고 사는 것이 참된 삶의 길임을 인생 체험을 통해 느끼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신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이신 하느님만을 섬기고 그분께만 경배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각자 사순절을 통해서 참으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의 모든 생활이 하느님 중심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자. 다시 한 번 하느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자. "이제라도 진심으로 뉘우쳐 야훼께 돌아오시오"(요엘 2, 12).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지금이 바로 그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고린 6, 2).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루가 4, 8).




사순절의 유혹과 결심

 
"예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성령을 가득히 받고 돌아오신 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셔서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사십 일이 지났을 때에는 몹시 허기지셨다. 그 때에 악마가 예수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하여 보시오.' 하고 꾀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루가 4, 1-4).

 
1. 사순절의 결심

사순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언가 좋은 결심을 하는 습관이 있다. 즉 담배를 끊는다거나, 술을 삼간다거나 좋은 음식을 삼가고, 그 밖에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 활동도 삼가면서, 예수님의 고통과 수난, 죽음을 묵상하고 그에 일치하려는 노력을 하는 아름다운 습관이 있다. 그런데 이런 결심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잘 지켜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작심 삼일로 끝나 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사순절 초기에 결심을 한 사람과 안한 사람 사이에는 분명히 그 시작부터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사순절은 40일 동안 우리 구원, 인생의 의미에 대해 명상해 보는 좋은 시기이다. 저마다 바쁜 생활 속에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도 잃어 가며 사업에 혹은 공부에 자신을 찾을 여가도 없이, 자신의 인생의 현주소가 어느 곳에 머물러 있는지 생각조차 할 여가도 없이 한 해 두 해를 넘겨 벌써 현재의 나이에 도달했을 것이다. 따라서 한번쯤 조용히 이 사순절 동안 자신을 찾아보는 것은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2. 시련의 극복을 통해 오는 인간 성숙

사순절은 인생의 의미 중에 특히 시련과 단련을 통해 자신의 약함을 극복해 보려고 노력하는 한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기 위해 40년 동안 사막에서 신앙의 시련을 겪고 준비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아무런 의미 없이 인간에게 시련과 어려움을 주신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시련을 주시는 목적은 오히려 복을 주시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속담에서도 "금은 뜨거운 도가니 속에서 제련된다."는 말이 있는데, 금이 되기 위해서는 뜨거운 불 속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순수한 신앙은 성서적 표현대로 "사막의 체험과 시련"을 통해 성숙해진다고 볼 수 있다. 이 사막은 인간의 일상 생활과 격리된 고요의 세계이다. 그리고 이 고요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자신과 싸우며, 자신의 선성과 신앙을 시험하는 사탄과 싸우게 된다. 이 고요한 사막에서 그 어려움을 이겨 내는 사람만이 자신과 남을 구원할 수가 있다.

이 사막은 바로 예언자들이 하느님과 만난 장소이기도 하다. 모세와 이사야 예언자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이스라엘 백성도 이 사막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십계명을 받아 하느님의 백성으로 탄생하였다. 또 요한도 사막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예수님의 길을 준비했고, 예수님도 공생활 시작에 40일간 사막에서 머물며, 사탄의 유혹을 받으면서도 자신과 하느님 왕국을 위한 길을 준비하셨다.

이러한 뜻에서 사막의 세계로 표현되는 사순 시기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 기간이며 자신과 싸워 영원한 천상 기쁨을 맛보기 위한 은혜의 시기이다. 교회 전례를 통해 사순절은 우리의 눈과 관심을 없어져 버릴 지상적인 것들로부터 영원한 천상적 실재에로 돌리게 해준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

그런데 우리 인간은 이 천상적인 것들을 동경하면서도, 지상적인 것들의 현실적이고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가 쉽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사막에서 자신과 싸울 때, 세 가지 유혹에 빠지셨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최근 가톨릭계에 물의를 일으켰던, 마르틴 스코르세스가 감독한 영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La dernière tentation du Christ)'에서는 예수님의 이 인간적인 고뇌에 대해 표현한 바 있다. 이 영화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예수님의 애착과 그리스도, 메시아로서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인간적 갈등을 잘 표현하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가진 능력으로 많은 재산과 권력과 명예를 쉽게 얻을 수 있고, 그것으로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유혹을 받으시지만 그 방법을 택하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러나 그 영화 감독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그 유혹들도 어려운 것이지만, 가장 큰 마지막 유혹은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이 한 가정을 가져 보고자 했다는 점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겠다. 가정은 인간 사회의 한 기본 구조로서, 인간의 휴식과 사랑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며, 남성과 여성이 서로의 도움과 결합으로 꿈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이다. 이 영화에서는 예수께서 마들렌(막달레나)을 사랑하고 마들렌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한 인간적인 욕망을 가장 강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유혹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그 순간까지 가장 견디기 힘든 유혹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위대한 점은 이러한 유혹을 전혀 느끼지 않는 무감각한 인간이 아니라 그러한 유혹을 하느님께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극복했다는 데에 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것, 하느님만을 경배하고 섬기라는 것, 이것이 예수께서 당신 스스로 지키고자 하셨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로서 제시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4. 극복해야 할 유혹과 시련

유혹과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공통된 것은 예수님이 사막에서 체험하셨던 위의 세 가지 유혹의 범주에 다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마태 4, 7)고 하셨다. 이 범주에 들어가는 유혹은 무엇이겠는가? 우선 아담과 하와가 받은 유혹이 바로 이것이다. "너희가 이 과일을 먹으면 하느님같이 되리라."(창세 3, 5)고 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또 사람은 빵을 구하기 위해 정상적인 노력과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 목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과도하게 저지르고 있는가? 또 하느님을 경배하는 일보다는 권력과 금력에 굽히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절하지 않는가? 물론 인간은 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약하지만, 파스칼의 표현처럼, 인간은 생각할 수 있기에 위대하며,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한다면 그 유혹들은 이겨 낼 수 있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상급을 주시기 위해 가끔 인간들을 시험에 놓아두시지만, 또한 그 시험들을 이겨 낼 은총까지 아울러 주신다고 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은 바로 네 곁에 있고, 그 말씀은 또한 너의 입 속에 그리고 너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로마 10, 8).

끝으로 사순절을 맞이할 때마다 특별히 일상 생활 중에 각자 자신의 사막과 그 고요한 장소는 어디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고요한 사막에서 자신이 당하는 유혹은 무엇인지, 아울러 그 고요함 속에서 내리시는 하느님의 은총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27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