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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

게르니카(Guernica) 1

by 大建 2022. 12. 4.

바스코 지방에 있는 도시로, 인구는 15,000명 정도이다.

에스파냐 내전은 프랑코의 우익 진영과 공화파 인민전선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었다. 
인민전선 정부가 선거로 정당하게 집권했음에도 프랑코 장군을 중심으로 한 진영은 이에 불복해 반란을 일으켰고 수많은 에스파냐 주민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학살하며 전쟁을 벌였다. 
에스파냐 내전 당시인 1937년 4월 26일, 독일 공군의 콘도르 군단이 파시스트인 프랑코 측을 돕기 위해 게르니카에 폭격을 가한다.
이 폭격으로 피레네 산맥에 자리 잡고 있던 평화로운 마을 게르니카는 불과 네 시간 만에 쑥대밭으로 변했다. 
하필 이 날이 장날이라 많은 주민들이 시장으로 몰려들었기에 인명 피해가 더욱 커졌고, 목숨을 잃은 사람은 1660여 명에 이르렀다.

이 비극적인 소식을 접하자, 피카소는  약 한 달 만에 7.5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작품을 완성한다. 이 그림이 바로 ‘게르니카’이다. 
때로는 몇 천 마디의 말, 몇 백 권의 책보다 단 한 점, 약 21 제곱미터의 그림이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피카소의 그림‘게르니카’는 전쟁의 참혹함과 공포, 광기를 입체파 화풍을 통해서 그 무엇보다도 생생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 전쟁의 잔인함을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할 수 있었다.

공원에 모조품으로 제작해 놓은 피카소의 게르니카

 

이 참혹한 학살-폭격을 기념하고 세계인들에게 평화와 정의, 인권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게르니카에 평화박물관 (Museo de la Paz)이 건립되었다.

박물관 외부에는 때마침 세계 어린이들이 그린 평화를 주제로 한 걸개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우리 나라 수원의 어린이들이 그렸다고 하는 그림이었다.

박물관 내부에는 게르니카 폭격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으며, 세계 역사상 인권 유린으로 말미암은 불의와 참상들, 평화의 필요성들을 호소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일본군 성노예 수탈과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내용도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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