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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

평화의 사도 유감

by 大建 2008. 4. 9.

이 원고 청탁을 받을 무렵에 남북 천주교 지도자들의 모임이 있었으며
거기서 이루어진 합의 중의 하나는 우리 모든 프란치스꼬인을 기쁘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남북의 천주교 신자들이 함께 바칠 기도문으로서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꼬가 지은 것으로 전해져 오는 “평화의 기도”가 정해졌다는 것이었다.
온 세상이 평화의 사도라고 부르는 성 프란치스꼬의 제자를 자처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필자를 비롯하여-은 아마도 이 소식을 접하면서 공연히 어깨를 으쓱하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프란치스꼬인이 되기를 잘 했지.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역시 우리 사부님은 명실상부한 평화의 사도이시며,
민족의 분단으로 고통받는 이 한반도의 가련한 중생들에게도 그 명성에 걸맞는 도움을 주시는구나. 
이것을 기화로 내가 그러한 성인의 제자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신자 한 사람이라도 더 프란치스꼬인으로(1, 2, 3회원을 막론하고) 끌어들여야 하겠구나”.
아마도 대개는 이러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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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을 이룩한 분들은 성인들이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업적들을 그저 이야기만 하면서
영광과 영예를 받기 원하니,
이것은 하느님의 종들인 우리에게 정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권고 6).

그렇다. 우리가 사부님의 업적을 그저 이야기만 하면서 영광과 영예를 받기 원한다면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프란치스꼬인으로서 지극히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그분이 평화의 사도로 살아가셨다면 우리 자신 또한 평화의 사도가 되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참된 프란치스꼬인의 자세일 것이다.
과연 우리는 평화의 사도라는 호칭에 걸맞는 자세로서 살아왔을까?
이 질문에 스스로 솔직하게 대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사부님이 평화에 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였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성 프란치스꼬가  ‘태양의 노래’라는 피조물의 찬가를 만들고 난 뒤의 일이다.
아씨시의 주교와 시장과의 사이에 심각한 논쟁이 일어났다.
그 결과로 주교는 시장을 파문하고
시장은 어느 누구도 주교에게 물건을 매매하지도 말고 매매 계약도 하지 못하도록 명을 내렸다.
성 프란치스꼬는 병석에 있으면서도 이 말을 듣고 몹시 침통해 하였으며
더구나 그들을 화해시켜 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더 한층 침통해 하였다.
그는 자기 동료들보고
‘주교님과 시장님이 서로 미워하고 아무도  그들 사이에 개입하여 평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있으니 하느님의 종들인 우리에겐 큰 수치입니다’”(완덕의 거울 101).
위의 권고 말씀이나 <완덕의 거울>에 나오는 이 유명한 일화 중에 사부님이 하신 말씀이나
모두 우리 프란치스꼬인이 어떠한 것을 수치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고 계신다.
그것은 바로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야고 2,26),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모든 그리스도인, 특히 모든 프란치스꼬인이 부끄러이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평화를 위하여 우리는 행동하여야 할 것인가?
필자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아씨시의 가난뱅이 프란치스꼬가 그토록 열렬히 추구했던 평화를
단순히 어떤 내면적인 마음의 평화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프란치스꼬인에게
나는 지금 당장 이 회보 읽기를 중단하고 <완덕의 거울>을 펴 들고
사부님이 불화 앞에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지 곰곰히 되씹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물론 문자로 전해진 사부님의 말씀들만을 살펴볼 때 그러한 오해를 할 소지는 충분히 있다.
사실 권고 13이나 15에서는 명백히 마음의 평화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기도 하다.
그러나 사부님은 마음의 평화‘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에 평화를 전하고 불화를 없이하는 평화의 사도로 살아가기 위하여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의 평화를 전제하실 뿐이다.
“형제들이 말로 평화를 전할 때에는
형제들의 마음에 한층 더 그러한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세 동료들의 전기 58).

실상 사부님은 그러한 내적인 평화를 간직하시고 볼로냐의 귀족들 간에, 아레쪼에서,
그리고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과 회교인들 사이에서
평화를 이루려 온 열정을 다 하셨다.
그리고 아씨시의 주교와 시장 간의 불화를 사부님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화해시킨 것은
중병을 앓고 계시던 생애 말기였음을 기억하도록 하자.

자, 그렇다면 20 세기의 평화의 사도들인 우리는 과연 어떠한 평화를 위해 살아 왔고 또 살고 있는가? 우리는 솔직히 소위 마음의 평화, 즉 내적인 평화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살아 왔으며
또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하여
주변의 불화-대부분의 불화는 불의(不義)로 말미암은 것이다-를 애써 모른 척하는
이기적인 신앙 생활을 해 왔음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내면의 평화만이 중요한 것이었기에 영적이 아니 것, 즉 세속의 평화는 중요치 않은 것이었고
또 우리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평화의 사도임을 자처하면서도
그 동안 그토록 온전히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공산주의와 그 신봉자의 말살(그 뜻은 “죽여 없애다”이다)에
적극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동조하였으며,
자본주의 사회만이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향인 것처럼 여기고,
저 너머에 있는 동포들과 화해하려는 어떠한 몸짓도 하지 않았음을 고백하도록 하자. 
다시 말하면 민족의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 - 통일”을 가져오려 노력한 것이 없음을 부끄러워하자.
또 수많은 젊은이들이
“정의가 꽃피는 그의 날에 저 달이 다하도록 평화 넘치리라”(시편 72,7)는 말씀을 실현시키고자,
정의를 위하여 몸을 사를 때 우리 프란치스꼬인 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소위 안정(성서적 의미에서 이러한 안정은 거짓 평화요, 부패임에도 불구하고)의 이름으로
그들을 질타하였음도 이제는 함께 아파하기로 하자.

평화의 사도가 된다함은 아씨시의 프란치스꼬의 제자라고 불리우는 것을 자랑하면서
그 회원 수를 늘려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마음의 평화만을 고집하면서
이웃과, 사회, 민족의 불화-불의로 인한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더 나아가서 편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평화의 사도가 된다함은 아씨시의 가난뱅이처럼 나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불화가 있는 곳에 직접 뛰어들어 하느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가져오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지금까지 한 일이 거의 없으니 이제 다시 시작합시다”.

재속 프란치스꼬회 월보 "평화의 사도“ 1996. 5월호 권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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