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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처음부터 내가 누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느냐?

by 大建 2009. 3. 31.

사순 제5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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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입회 전, 본당에서 청년회 활동을 하던 어느 해 사순절에 미리내로 피정을 갔다.
성당에서 성체가 현시가 되어 있는 가운데 성체 조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와서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울었던 적이 있다.

그때까지는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돌아가셨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많은 사람" 중에는 바로 "나"도 포함된다는 것을 새삼스러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로 나의 죄 때문에, 바로 나의 이기심 때문에,
예수께서는 수난하고 돌아가신 것이었고,
하찮은 빵의 모습으로 오늘도 쪼개지셔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때가 세례받은지 7년쯤 되던 해였으니까,
참 예수를 알게 되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했던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예수의 정체를 묻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내가 누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신다.
우리도 세례 때의 교리를 통해서 이미 예수가 누구이신지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를 모르는 체 하고 살거나,
아니면 실제로 나에게 예수가 누구이신가 하는 질문을 반복하며 산다.
이러한 우리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그분께서는 덧붙이신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기 죄에 대해 인식하고 그분 죽음의 의미를 께달을 때에만,
즉 자신의 삶의 모습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그분의 사랑을 깨달을 때에만
그분이 "나"에게 누구이신지 온몸으로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도 회개생활 초기에
"당신은 나에게 누구시며, 나는 당신에게 누구입니까?" 라는 기도를 반복하다가
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 아래에서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는
평생 가슴에 십자가를 새기고 살았다고 하지 않는가!
지식으로만 아는 신앙이 아닌, 온 삶과 연관되는 신앙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지극히 죄스런 "나"도 포함되어 있음을 인정하기로 하자.

오늘 다시 성체 앞에서 울음을 터뜨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