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481 자비로운 목자의 계산법 대림 제2 주간 화요일(마테 18,12-14) 오늘날은 기술이 발달해서 휴대폰이나 GPS 등을 이용해서 위치 추적을 할 수가 있고 실제로 부모들은 그러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관리하기도 한다고 한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러한 기술이 발달했더라면 구태여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서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떠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 본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그러한 문명의 혜택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밖에 없으며, 혹은 그러한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인 관심이 필요하기에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은 오늘날에도 분명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생각 안에서, "목자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두고 가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 2017. 12. 12. 낙타의 겸손 대림 제1 주간 월요일(마테 8,5-11)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는 아침마다 묵묵히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주인이 얹어주는 짐을 자신의 등에 짊어진다. 하루 일과가 끝나는 저녁 시간이 오면 낙타는 또 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조용히 기다린다. 언제나 주인 앞에 고분고분 무릎을 꿇는 낙타 모습에서 참된 겸손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 매 순간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주인 앞에 말없이 무릎 꿇는 모습, 매일 자신의 의무를 기꺼이 행하는 모습, 주인이 매일 얹어주는 짐을 아무 불평 없이 지고 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로마인 백인대장은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하고 .. 2017. 12. 4. 우리에게 정말로 부끄러운 일 11월29일 세 프란치스칸 수도회의 모든 성인들 축일 1223년 11월 29일 교황 호노리오 3세는 작은 형제회의 회칙을 인준하였다. 이 회칙을 따라 살던 이들, 그리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따라 살던 이들 중 수많은 이들이 성인 성녀, 복자 복녀들이 되었고 천상 복락을 누리고 있다.그리하여 이날 11월 29일을 프란치스칸 모든 성인의 날로 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성 프란치스코는 성인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형제 여러분, 우리 모두 당신 양들을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감수하신 착한 목자를 바라봅시다.주님의 양들은 고통과 박해, 모욕과 굶주림, 연약함과 유혹, 그리고 다른 갖가지 시련 가운데 주님을 따랐기에, 주님한테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그런데 업적을 이룩한 분들은.. 2017. 11. 29. 시대의 징조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루까 12,54-59) 오늘 복음을 보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해 하셨는지를 느낄 수 있다.사람들이 땅과 하늘의 징조는 알면서도 시대의 징조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대의 징조는 무엇일까?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시대의 징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 안에서 각자가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다.그러나 단순히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바, 당시 군중들이 알지 못했던 시대의 징조는 바로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그분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아는 것을 뜻한다.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누구이시며 세상에 왜 오셨을까?그분은 아버지 하느님의 파견을 받아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그런데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그분을, 그리고 그분을 보내신 분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017. 10. 27. 깨어 있는 자세로 책임있게 살아가기 연중 제29 주간 화요일 (루까 12,35-38) 나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하기에 조는 일이 거의 없지만, 혹시 몸이 피곤하거나 하여 운전 중에 졸리는 일이 있으면 꼭 근처에 차를 세우고 쉬었다 가고는 한다.졸다가 사고가 나면 나의 생명을 해치는 일이기도 하지만 혹시 다른 차량과 접촉 사고라도 나면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해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운전을 하지 않고 조수석에 앉으면 십중팔구는 꼭 존다는 사실이다. 졸음이라는 것도 전염된다고 하던데 운전하는 사람 옆에서 졸면 그에게 참 미안한 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졸지 않으려고 기를 써보지만 어느 새엔가 또 졸고 있는 나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이렇게 운전하는 사람 옆에.. 2017. 10. 24.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연중 제27 주간 목요일(루까 11,5-13)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나의 아버지는 무척이나 완고하시고 또 (경상도 남자들 이상으로)무뚝뚝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사춘기 이래로 대화가 점점 줄어들었고 그것이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이제와 생각하니 참 마음이 아프다. 있는 그대로의 그분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어야 하는데, 그리고 내가 더 살갑게 다가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적어도 대학을 졸업하기 이전까지, 즉, 부모님께 의지하여 사는 동안에는 아버지는 우리 형제에게 물질적으로 최대한 잘 해 주시려고 노력하셨음을 안다(내가 대학 다닐 때는 하시던 사업의 실패로 가세가 많이 기울기는 했지만).그래서 어렸을 때는 부모님에게 떼도 많이 쓰고 .. 2017. 10. 12. 이전 1 ··· 4 5 6 7 8 9 10 ··· 8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