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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봉헌

by 大建 2014. 2. 2.

주님봉헌 축일(루카 2,22-40)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를 낳고 율법의 규정에 따라 40일 만에 그 아기를 성전에 안고 가 하느님께 봉헌한 것을 기리는 축일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성모님이 율법의 규정에 따라 산후 정결례를 하신 날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성모 취결례라 하여 성모님의 축일로 지냈습니다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주님이 봉헌되신 것에 초점을 맞추어 주님 봉헌 축일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봉헌을 기념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마땅히 하느님께 새롭게 전적으로 봉헌되어야 함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맏아들과 맏배의 봉헌을 이렇게 명하십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맏아들, 곧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다.’”(탈출 13,1-2) 하느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맏아들을 살리시고 당신의 구원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기시기 위해 맏아들과 동물의 맏배를 당신께 바치게 하십니다. 사람의 소중한 생명의 주인은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백성에게 알리시는 것이지요. 구약 시대 모세의 울법에 의하면, 사내아이를 낳은 부인은 누구든지 40일째 되는 날 성전에 참배하고 감사의 희생을 바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희생물로서는 양 한마리와 작은 비둘기 한 마리가 보통으로 되어 있지만, 만일 가난한 사람이라면 비둘기 두 마리도 무방하다고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율법에 따라 성전에서 봉헌되십니다만 그 아기가 범상치 않은 인물, 구세주이심을 알아본 시므온이라는 예언자는 구원의 빛이 이 세상에 나타났음을 감사드리며 찬미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시아의 탄생은 바로 어두움 속에서 만나는 구원이 빛이었습니다. 또한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들에게는 그분의 위대하심, 그분의 자비하심을 밝히 드러내주는 계시의 빛이시기도 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의미로 교회는 오늘 초 축복과 빛의 예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즉 구원의 빛이시오, 계시의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전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되었듯이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서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는 것이 오늘 전례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빛이 아니라 빛을 받아 전하는 도구일 뿐이므로, 마치 태양이 없으면 별들도 빛을 잃듯이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안 계시다면 세상에 빛을 비출 수 없음을 생각하고, 성부께만이 아니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도 더욱 우리 자신을 봉헌해야 할 것입니다.


봉헌은 하느님께 자신을 바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모님이나 어떤 다른 성인들께 우리를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그리스도인답게 하느님께만 우리를 봉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께 스스로를 봉헌하는 것은 마음이나 상징적인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 내용을 살아갈 때, 즉 우리의 모든 행위를 하느님의 뜻에 맞게 이끌어 갈 때 실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미사를 통하여 하느님께 우리 스스로를 봉헌함과 동시에 이 세상의 빛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봉헌한다고 할 때 우리 자신은 하느님께 바쳐지고 없어지는 것이므로 이제는 하느님의 뜻만이 우리 안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뜻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3,20)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분께 내어 드리지 아니한다면, 즉 봉헌하지 아니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분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우리의 미지근한 믿음 생활을 뉘우치면서 세례 때에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듯이 다시 한 번 우리를 하느님께 봉헌해 드리도록 합시다. 그리고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삶 안에서 사랑의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한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오늘 주님봉헌축일을 봉헌생활의 날로 정하시고 실질적으로 봉헌생활을 하고 있는 온 세상의 수도자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또 수도 성소의 증가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날로 정하셨습니다.

사실, “봉헌생활(수도생활)과 같은 구체적인 표징이 없을 때 교회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 사랑이 식어지고, 복음을 전하는 구원의 역설은 무디어지며, 세속화로 치닫고 있는 세상에서 신앙의 소금은 그 맛을 잃게 될 것입니다”(바오로 6, 복음의 증거, 3). 이처럼 세상을 위해서나 교회를 위해서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수도자들이 자신들의 봉헌을 새롭게 하고, 온전히 스스로를 바침으로써 더욱 더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매진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보다 넓은 마음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삶을 갈망하는 젊은이들이 더욱 늘어나도록 이 미사 중에 함께 열심히 기도하도록 합시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을 봉헌하면서 그리고 온 세상의 수도자들을 위하여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와 더불어 기도합시다.


주여,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에 황송하옵게도

당신이 죽으셨으니,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 때문에 나도 죽을 수 있도록,

당신 사랑의 불과도 같고 꿀과도 같은 힘으로

내 마음을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에서 빼내어 차지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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