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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새 하늘 새 땅

교황 베네딕토 16세, 세계 평화의 날 담화(발췌)

by 大建 2013. 1. 8.

교회가 세상에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촉진했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개막 50주년인 지금, 그리스도인들의 헌신을 확인하면 힘이 솟아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고 온 인류와 함께 살아가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역사 안에서 인류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고 모든 이를 위한 평화 증진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긍정적이고도 부정적인 측면을 지닌 세계화를 특징으로 하며, 끊임없이 계속되는 유혈 분쟁과 전쟁의 위협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과 한 인간의 온전한 발전과 공동선을 함께 추구하는 새로운 헌신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평화에 대한 갈망은 기본적인 도덕 원칙, 곧 사회와 공동체의 온전한 발전에 대한 의무와 권리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류를 위한 하느님 계획의 일부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선물인 평화를 위해 창조됐습니다...



평화는 인격 전체와 관련되고 모든 인간의 참여를 요구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면서 하느님과 이루는 평화입니다.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에서 요한 23세 복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평화는 무엇보다 진리, 자유, 사랑, 정의를 토대로 공존을 이루는 것입니다.

참다운 평화의 일꾼이 되려면, 초월적 차원에 관심을 갖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평화를 어둡게 하고 부인하는 온갖 형태의 죄악들, 곧 이기주의와 폭력, 탐욕, 권력욕, 지배욕, 불용, 증오와 불의한 구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평화 실현은 무엇보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한 인류 가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 있습니다. 한 인류 가족은 진리와 정의에 따라 서로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내적 외적 도덕 질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평화는 사랑으로 힘을 얻고 온전해지는 질서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요구를 자기 것으로 느끼고, 자기 재물을 다른 이들과 나누며, 세상에 정신적 가치들이 더욱 널리 공유되도록 노력합니다. 평화는 자유 안에서 이루어지는 질서입니다.

예수님의 참행복에 따르면,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오늘도 내일도 다른 이의 선을, 그의 몸과 마음의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평화는 원칙적으로 다양한 사회, 곧 기초나 중간 집단에서, 국가적, 국제적, 세계적 차원에서 사회의 공동선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공동선을 실현하는 길은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걸어가야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평화의 일꾼들은 급진적 경제 자유주의와 기술 관료주의의 이념들이 여론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도 명심하여야 합니다. 이 이념들은 국가의 사회적 책임과 시민 사회의 연대망을 해치고 사회적 권리와 의무를 손상시키더라도 경제 성장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신념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가장 큰 위협을 받고 있는 사회적 권리와 의무 가운데 하나가 노동의 권리입니다. 경제 발전은 주로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에 달려 있다고 여겨 노동이 점점 더 경시되고 노동자의 법적 지위가 올바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인간 존엄과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논리가 “모든 사람의 안정된 고용 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도록” 끊임없이 요구한다는 것을 재천명하고자 합니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한 가지 전제 조건은 새로운 노동관입니다. 이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위한 근본 선으로서 노동의 개념을 강화하는 윤리 원칙과 정신적 가치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새로운 경제 발전 모델을 통해 평화의 선을 이룩하십시오

오늘날 많은 분야에서, 경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발전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연대를 통한 지속 가능한 통합적 발전과 공동선은 모두 재화와 가치에 대한 올바른 척도를 요구합니다. 그 척도는 하느님을 궁극적인 준거로 삼고 있습니다.

극심한 불평등을 자아내는 금융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과 단체와 제도들이 필요합니다.

경제 분야에서, 특히 정부는 산업과 농업 발전 정책을 표명하여야 합니다. 또한 금융 통화와 상업 시장을 위한 윤리 구조의 창출이 근본적이고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시장들은 안정되어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도록 더 많은 조정과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평화의 일꾼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각오로 재정 위기보다 더 심각한 식량 위기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이 위기에 직면하여, 평화의 일꾼들은 지역 차원에서부터 국제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연대 정신으로 함께 일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수많은 평화의 일꾼들이 가정의 공동선과 사회 정의를 위한 열정을 키우고 효과적인 사회 교육에 헌신하도록 부름 받았음을 거듭 강조하고자 합니다.

가정은 인구, 윤리, 교육, 경제, 정치의 관점에서 사회의 기본 세포로서, 그 핵심적인 역할을 누구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은 생명을 증진해야 하는 본래의 소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 가정은 하느님 사랑의 기준에 따른 인격 성숙의 못자리가 됩니다. 도덕과 신앙에 관한 자녀 교육에서 부모의 권리와 그 일차적인 역할이 지켜져야 합니다.

문화 단체, 학교, 대학교는 평화를 위한 특별한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들을 양성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 국제적 공공 기관의 쇄신에도 중요한 공헌을 하여야 합니다. 그들은 또한 경제 금융 활동을 굳건한 인간학적 윤리학적 기반 위에 놓는 학문적 성찰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특히 정치계는 신선한 사고와 새로운 문화적 종합으로 뒷받침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순전히 기술적인 접근을 극복하고 다양한 정치적 흐름이 공동선의 관점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하여야 합니다. 공동선은 개인과 집단의 통합적인 발전에 봉사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의 긍정적인 관계의 총화로 여겨지며 모든 참다운 평화 교육의 토대가 됩니다.

결론적으로, 평화 교육을 제안하고 촉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평화를 이룩하는 일은 공동선의 실현으로 이어지고, 평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며 평화를 가르칩니다. 평화에 관한 생각과 말과 행동은 평화의 정신과 문화를 형성하고 존중과 정직과 친절의 분위기를 이룹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평화를 일구며 단순한 관용보다는 선의를 지니고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평화를 근본적으로 촉진하는 것은 “복수를 거부하고, 자신의 불의와 잘못을 인정하며, 바라지는 않지만 사과를 받아들이고, 마침내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용서에 대한 교육이 증진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우상들이 내세우는 거짓 평화와 그에 따르는 위험을 거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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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과 주교님들이 저토록 사회교리, 정의와 평화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건만 이 땅의 가톨릭 신자들은 귀에 대못을 박아놓은 듯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마치도 자신들은 이 사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인 것처럼... 그리고 다른 세상에 속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좋은 기도문, 좋은 말들만 열심히 퍼나른다. 자기가 속한 사회에 관심이 없고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 하느님과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참으로 답답하다.
그러나 한편 그들이 여러 상품 및 이벤트에 혈안이 되어서 링크를 하는 것을 보면 그러한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사실은 물신주의에 빠져 있는 것임을 알수도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고, 나는 무기력한 사제라는 사실이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