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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생명을 위한 따름

by 大建 2014. 3. 6.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신명 11,26; 루까 9,22-25)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한결같이 "생명을 위한 따름"이다.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걸으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신명 30,16). 주님께서는 여기서 "사랑, 따름 = 생명, 축복: 증오, 무관심, 배반 = 죽음, 저주" 의 등식을 제시하고 계신다.
그런데 공자는 "순천자(順天者)는 살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고 했다. 즉, 하늘의 뜻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은 살 것이요,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뜻이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순리요 생명이라는 사실이 역설되어 온 것이다.

복음에서도 역시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셨는데 결국 같은 뜻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분이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를 부르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먼저 부르시는 이유는 오로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당신 속성인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기" 위함이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생명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렇게 그분께서 우리와 인격적인 교류를 하시고자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시니, 우리는 이 사랑을 받아들여 그분을 따라나섬으로써 그분과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을 믿는 사람, 신앙인의 자세인 것이다.

요즈음, 검찰, 국정원, 경찰, 언론이 권력의 주구(走狗)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주구는 권력의 부스러기를 주워먹기 위해서 열심히 따라다니지만 개는 개일 뿐이다. 따라서 자신이 좇아가는 자와 통교를 이루지 못하고 끝내는 버림을 받거나 죽음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기꺼이 따라가는 것이고, 참된 사랑에는 언제나 희생이 수반된다. 따름은 떠남을 의미하는 것이고, 떠남은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할 때 바로 그분의 것, 하느님의 것인 생명,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십자가의 진리인 것이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맹목적으로 또는 어떤 사심을 품고 예수님을 따르는 주구가 되고 그래서 마지못해 고역을 참고 사는 죽음의 길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나 자신을 희생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삶으로써 그분의 참 제자가 되어 그분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인지 깊이 묵상하고 다짐해보자.

                                                                                                                                                           (4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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