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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권한과 권위

by 大建 2008. 12. 15.

대림 제3 주간 월요일(마테 21,23-2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하고 따져 묻는다(23).

사제인 나는 무슨 권한으로 거의 매일 성당에서 주님의 거룩한 성찬례 중에 강론을 하는 것일까?
당연히 주교님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강론을 하고 신자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권한을 위임받았지만 나는 원래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강론을 잘 못한다.
강론을 잘 못할 뿐만 아니라 내 삶은 그리 신자들에게 귀감이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신자들이 강론에 별로 감흥을 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다시 말하면 가르침에 권위가 없는 것이다.

당시의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은 전통에 따라 백성을 가르칠 권한이 있었다.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들이었지만 오늘날의 나처럼 별로 권위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그들의 행태가 잘 설명해준다.

그들이 예수님께 앞에서와 같이 따져 묻자 그분은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하고 물으신다.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24-27).
그들은 예수께서 묻는 것에 대해서 답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책임이 두려워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니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자신들의 말에 대해 책임을 지지 못하며, 진실을 숨기는 작태를 보였기에
하느님으로부터도, 군중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즉 그들은 권위를 지니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어떠하셨는가?
그분은 비록 인간 제도에 의한 권한을 부여받으신 바 없지만
권위를 지니신 분이었다.
하느님의 말씀(Logos) 자체로서 살아가신 분으로 그분의 말씀은 곧 이루어지는 말씀이었고
그래서 군중들은 그분 말씀의 권위에 놀랐다(마테 7,29; 마르 1,22 등).
그뿐만 아니라 당신의 가르치심을 삶으로서 실천하신 분이었으며
진리를 밝히 드러내셨기에 더욱 권위가 있으신 분이었다.
제자들에게 매일 십자가를 지고 살라고 하실 뿐만 아니라
몸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당신 말씀을 지키셨던 분이었다.

권위는 외적 조건, 신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삶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거짓을 거부하고 진실을 살아가는 모습,
온 몸으로 자신의 삶을 실천하는 모습을 지닐 때 권위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습에는 못미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권위, 하느님 자녀로서의 권위를 실추시키지 않는 그러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자.

사제로서의 권한을 부여받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