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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짜증나는 사순절?

by 大建 2009. 2. 25.


재의 수요일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많은 이들이 사순절에 대해서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매년 돌아오는 이 시기는 무조건 고신극기(苦身克己)를 하기 위해서
금육, 단식을 일삼아야 하고, 희생을 많이 해야 하고, 십자가의 길도 하면서
내색은 하지 않지만 어렵살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본당에서는 남자들은 술, 담배도 끊고 여자들은 화장이나 옷치장도 삼가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하는 모양이니
더욱 그러할 수 밖에...
이렇게 억지로 억지로 40일을 지내다 보니 어느새 부활절이 되고 이 때부터 비로소 살판난다.


그러나 사순절은 그러한 시기가 아니다. 고통의 시기가 아니라 은총의 시기이다.
우리 인간들, 그중에서도 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다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시기이다.
먹고 살기 바뻐서, 사도직에 쫓겨서 잊고 살아온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하느님과 멀어졌던 나의 삶을 추스리고, 그분과의 관계를 재정비하는 시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희생을 하고 고신극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드러났던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묵상해 보고
또 예수님처럼 아버지 뜻에 순명하는 사랑을 드리기 위해서 나의 뜻, 나의 것을 포기하는 체험도 하고...
그렇게 하여 사랑이, 특히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얼마나 좋은지
깊이 맛볼 수 있도록 마련된 시기이다.


예수님께서 억지로 성부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셨는가?

아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삶 속에서 깊이 느끼셨기에 기꺼이 당신 길을 가지 않으셨는가?
예수님께서 마지 못해 광야에 나가셨는가?
아니다. 세례 때에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말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하는 말씀에 깊이 감동되어,
그러한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삶의 길을 찾기 위해 광야에 나아가신 것이다.

 


자, 이제 억지로 하던 단식, 금육, 고신극기는 때려 치우자.
그리고 먼저 이 짧은 기간 40일 동안 하느님의 사랑에 심취하기 위하여 기도에 몰두해 보는 삶을 살아 보자.
나름대로 답을 주실 것이다.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 딸들인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사는 것이 더욱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인지... 
그것을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극기, 자선은 위선일 뿐이다.

주님께서 단식 중에도 얼굴을 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짜증스럽게 사순절을 보내지 않는다.

                                                                                                                                 (95R_4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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