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필생즉사 필사즉생

by 大建 2009. 2. 20.

연중 제6 주간 금요일(마르 8,34-9,1)


우리 국민 모두가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께서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부하 장졸들에게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이라 외치셨다고 합니다.
즉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요, 살고자 꾀한다면 죽을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비단 전쟁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 안에서도 어떤 일을 하든지 죽을 각오로 덤벼들면 못 이룰 일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꾀를 부리며 당장 편안함만 추구하면 그 어떤 일도 이루기 힘듭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떤 일을 앞두고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혈연의 인연을 끊고 자신의 위치와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결단입니다.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과 모든 장수와 병사들이 이러한 마음으로 전장에 임했기에 결국 우리 민족을 일본침략의 칼 아래에서 구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13척의 배로 300여척의 일본 전함을 상대해서 대승을 거둔 것은 세계 해전사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싸움이었다고 합니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뒤집고 대승을 거둔 것은 이순신의 뛰어난 전술 덕이기도 하겠지만,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정신이 이순신을 비롯한 모든 장병에게 있었기에 승리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이런 정신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행복과 부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일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웃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다시 한번 오늘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가신 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분은 사리사욕없이 사시며 스스로를 “바보”라고 일컬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렸듯이 1987년 6.10 국민운동 당시 김 추기경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던 시위대가 명동성당에 진입하자 이들을 강제연행하려는 정부에 단호히 맞서 “당신을 밟고 지나가라”고 하시면서 죽기로 공권력과 맞서심으로 시위대의 안전을 지켜냄으로써 6.29 선언을 이끌어내는데 일조했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예수님께서는 위와 같이 내세우고 있습니다. 전장에 임하면서 이순신 장군이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에게 한 말과 비슷한 의미의 말씀입니다. 결국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커다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이웃에게 고통과 아픔을 안겨주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탐관오리같은 공무원과 정치꾼들의 부정부패는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고와 사건들은 모두 개인적인 욕심과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한데서 일어난 결과입니다. 이처럼 개인적인 욕심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과 가족, 타인에게 커다란 상처와 고통을 주게 되고 결국 죽음이 판치는 사회가 됩니다.


그렇기에 욕심과 걱정을 버리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이기도 하지만, 자신과 가족, 타인과 사회가 함께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내 욕심을 버리고 그분의 십자가를 함께 지려는 삶을 살 때 즉 죽음의 길을 택할 때, 내가 살게 되고, 내 이웃이 살게 되고 결국 우리는 참 생명이 넘쳐나는 하느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욕심을 부리고 나만 살려고 할 때 내가 죽고 내 이웃이 죽고, 죽음의 세력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우리는 생명과 죽음 중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지, 그리고 생명을 택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이 묵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너희 앞에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 너희나 너희 후손이 잘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신명 30,19).

                                                                                                                             (97z)

'믿음 희망 사랑 > 강론,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가복지의 효시  (4) 2009.02.28
짜증나는 사순절?  (4) 2009.02.25
지피지기(知彼知己)  (6) 2009.02.19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며  (6) 2009.02.18
영적 귀머거리  (9) 2009.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