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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톨릭, 종교

죽산 성지

by 大建 2014.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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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빛이 내려쪼이는 어느 날 오후 몇몇 신자들과 의기투합하여 죽산 성지에 다녀왔다.

죽산성지는 30여년 전, 청년시절에 본당에서 주일학교 아이들과 한번 다녀온 적이 있었기에

작고 아담한 모습의 성지로 기억을 하고 갔지만,

그때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은 거대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성지로 변해 있었다.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서울에서 중부 고속 국도 남쪽을 향해 달리다가 일죽 인터체인지에서 돌아 들어가면 죽산 성당이 나온다. 성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교우들이 살육됐던 처형지와 교우들을 끌어다 심문과 고문을 하던 관아 터가 자리하고 있다.

충청·전라·경상도로 갈라지는 주요 길목인 죽산에는 그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조선 시대부터 일찍이 도호부가 설치되어 있었고 인근의 교우들이 붙잡혀 오면 지금은 죽산면사무소가 되어 버린 이곳에서 참담한 고문 끝에 처형 되곤 했다. 여기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은 「치명 일기」와 「증언록」에 그 이름이 밝혀진 이만해도 25명에 이른다. 하지만 척화비를 세우고 오가 작통(五家作統)으로 사학 죄인을 색출, 무차별적으로 교우들을 끌어다가 처형하던 당시의 몸서리쳐지는 박해의 서슬을 생각해 볼 때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무명의 순교자들이 목숨을 잃었는지는 셀 수 조차 없다.

병인박해가 시작된 1866년부터 이곳에 공소가 설립되기 2년 전인 1932년까지 무려 70여 년 동안 신자 공동체의 형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음은 그 당시 박해의 참상과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죽산의 순교 사화는 참으로 눈물겨운 이야기들뿐이다. 박해를 피해 산 속으로 숨어들었던 김 도미니코의 가족이 교우인 사실을 안 마을사람 십여 명이 작당을 하고 찾아와 열일곱 된 딸을 내놓지 않으면 포졸들을 불러 몰살시키겠다고 협박, 기어이 딸을 빼앗아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60세의 나이에 교수형으로 순교한 여기중은 한 가족 3대가 한자리에서 순교했다. 또 여정문은 그 아내와 어린 아들이 한날, 한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국법으로는 아무리 중죄인일지라도 부자를 한날 한시에 같은 장소에서 처형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죽산에서는 부자와 부부를 함께 처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이들이 죽산 관아에서 심문을 받고 끌려가 순교한 처형 장소가 잊은 터이다. 지금은 굴착기로 깎아 냈고 목장의 한 귀퉁이로 변해 버렸지만 목장이 되기 전에는 노송이 우거지고 길에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 후미진 골짜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이진(夷陳) 터이다.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竹州山城)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이다. 그래서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으로 불려 왔던 것이다. 하지만 병인박해를 지나면서 이진터는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하여 잊은 터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도 친지도 한번 끌려가면 영영 볼 수 없는 곳, 그 참담한 비극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죽산에는 또 두들기라는 곳이 있다. 죽산면에서 15리쯤, 지금은 삼죽면 소재지로 80여 호가 사는 큰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인가가 드문 작은 주막거리였다고 한다. 그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설이 있다. 지형이 조금 도드라져 이렇게 불렸다고도 하고 땅이 진흙이어서 신을 땅에 두드려 패지 않으면 신바닥에 붙은 진흙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두들기는 병인박해 때 교우들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한 많은 땅으로 변한다. 용인, 안성, 원삼 등지에 사는 교우들이 포졸에게 잡혀가는 호송길에 이 주막거리는 잠시 쉬어 가는 곳이 되곤 했다. 포졸들은 줄줄이 묶어 둔 교우들을 툭하면 갖은 트집을 잡아 두들겨 패곤 했다. 또 뒤쫓아온 가족들은 잡혀 온 교우들이 맞는 것을 보고 땅을 두드리며 원통해 했다. 이래저래 두들기는 두들겨 맞는 곳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기록에만 25명의 순교자가 순교한 곳으로 전해지는 순교의 터는 오늘도 그 옛날 굳건한 신앙을 지켜 갔던 신앙 선조들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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