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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하느님에 대한 오해

by 大建 2008. 3. 29.
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마테 1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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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마리아의 말도 안 믿고,
엠마오의 두 제자들의 말도 안 믿고 하다가,
실제로 그들 앞에 나타나신 주님께 호된 꾸지람을 듣는다.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마음이 완고하여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그들을 꾸짖으셨다".
예수와 함께 3년 여에 걸쳐 함께 생활했던 그들인데, 왜 그랬을까?
하느님에 대한 무지 혹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구약성서를 보면 하느님의 호칭으로서 "샷다이", 혹은 "샤바옷"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전능하신 분", "강하신 분" 등의 의미를 지니는 말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을 전능하신 분이라 믿고 또 부르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하느님께 열려져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거부하기 때문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고, 또 제자들은 그분의 부활을 믿지 못한 것이다.
"모든 것이 가능한 분"에 대한 개념을
"내가 아는 한의 모든 것"으로 바꾸어버린 무지 또는 오해인 것이다.
사이버 공간의 종교인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장(場)에 가면 십중팔구 만날 수 있는 것이
교리 논쟁이다.
개신교, 가톨릭 할 것 없이 편협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은 오늘도
하느님께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
하느님 만이 유일한 진리이시다.
그러나 폐쇄된 교리 체계 안에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다른 이들 안에서 드러내시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들의 지식 체계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한다.
하느님과 그분의 진리를 유한한 인간의 틀 안에 가두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그러한 틀, 죽음의 틀 안에 갇혀 계실 분이 아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나타나시어 광적으로 폐쇄돼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을 꾸짖으시고 계신다.
영국의 지성인, 소설가 그레엄 그린은
"하느님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분이라면 나는 믿지 않겠다"고 하였다.
진정 우리는 하느님과 그분의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사는 것은 아닐까?
그뿐께 신비의 영역을 남겨드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을 올바로 이해한다고, 올바로 믿는다고 할 수 없다.
하느님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도록 하자.
                                                                                                                                                               (859M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