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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르찌운꼴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리보또르또(Rivotorto: 굽은 강이라는 뜻) 수도원이 있다.
처음에 리보또르또에 양우리가 있었는데 성 프란치스꼬는 뀐다발레의 베르나르도, 삐에뜨로 까타니 형제와 함께 그의 첫 거처로 삼았다. 이후 12명의 형제가 될 때까지 여기서 극도의 가난과 형제애를 추구하면서 머물렀다.
1210년 프란치스꼬는 12명의 형제들과 함께 생활양식(회칙)의 인준을 청하러 형제들과 함께 여기서 로마로 떠났으며,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구두 인준을 얻은 후에는 새로운 거처를 찾아야만 했다.

불마차의 환시(1첼라노 47 참조)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시간 관계상 우리는 프란치스칸 운동의 원천지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의 내부를 살펴볼 수가 없었다.
다시 버스에 오르니, 버스는 프란치스꼬가 처음으로 주님의 신비스러운 목소리를 들었던 스뽈레또를 향하여 달린다.
1205년 프란치스꼬가 기사 작위를 얻을 욕심으로 전투에 참여하려 아뿔리아로 가던 중, 어느 날 밤 자고 있는데 "너는 종을 섬기려느냐, 주인을 섬기겠느냐?하는 신비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주인을 섬기겠다"는 대답을 하고는 그길로 아씨시로 돌아가서 주님이 원하시는 뜻을 구하기 시작한다(2 첼라노 6 참조).
그가 신비스러운 체험을 한 장소는 스뽈레또 근처라는 것 이외에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없다.
우리는 스뽈레또의 주교좌 성당을 찾았다.

이 성당에서 1232년 5월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은 빠도바의 성 안또니오를 시성하였다.
또한 성당 안 왼쪽 경당에는 ‘프란치스칸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부르는 성 프란치스코의 자필 서한 중의 하나인 ‘레오 형제에게 보내신 편지’가 있다. 이 편지는 프란치스꼬가 레오 형제에게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는 대로 자유로운 마음으로 실행하라고 권고하는 자유에 관한 글이다.

주교좌 성당에서 잠시 기도한 후 우리는 근처의 몬테 루꼬 은둔소로 순례의 발걸음을 계속하였다.

몬테루꼬에 프란치스꼬와 그의 제자들이 처음 자리잡은 것은 1218년으로 여러 형제들이 자주 이용하였는데, 그 중에 성 보나벤투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복자 파비아의 프란치스코,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등을 들 수 있다.
이 곳엔 프란치스코와 초기 동료들이 사용하였던 독방이 7개가 보존되어 있는데, 방들은 덩굴 풀로 묶은 갈대나 점토로 만들어진 참으로 열악한 장소들이다. 그리고 독방들 바로 옆에는 프란치스코에 의해 기적적으로 물이 솟았던 샘이 있다.
다시 한번 프란치스꼬 성인과 그 동료들의 가난한 관상생활에 감탄하고 우리에게도 그러한 가난의 정신을 주시기를 기도한 후 우리는 프란치스칸 3대 계곡 중 하나인 리에띠 계곡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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