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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너희를 고소하리라!

by 大建 2015. 10. 23.
연중 제29 주간 금요일(루가 12,54-59)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오늘 복음에서 하시는 말씀이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두 단락으로 구성된다.
첫 단락은 "하늘의 징표는 풀이할 줄 알면서 왜 시대의 징표는 풀이할 줄 모르느냐?"는 꾸지람, 탄식의 말씀이시다.
즉 당신의 "올바른 일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 나라의 징표, 당신을 통하여 인간들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임재하심을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한 말씀인 것이다.
두번째 단락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화해"에 관한 말씀(?)이다.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나는 이 두 단락이 함께 연결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도대체 시대의  징표를 깨닫는 것 하고 인간들 사이의 화해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씀인가?
그래서 복음사가가 어떤 편집의도로 연결시켜 놓은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두번째 단락은 첫번째 단락과 분명히 연관되는 말씀이다.
단순히 인간들 사이의 화해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시대의 징표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
당신 안에서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바라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을 고소하시겠다는 말씀이다. 누구에게? 아버지 하느님께...
모골이 송연해 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우리는 누구나 재판관이신 하느님 앞에 서게 된다. 그분께 나아가는 여정이 인생이다.
이 여정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나아가신다.
우리와 함께 나아가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아버지께 고소하시겠다는 말씀이다.

물론 이 말씀은 직접적으로 당시의 바라사이와, 율법학자들, 더 나아가서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다인들에게 향하는 말씀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아닌가!
믿음이 단순히 입으로, 말로만 고백하는 것이라면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상 그리스도교회 안에서도
시대의 징표를 알아보지 못하고, 때로는 애써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했기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그토록 시대의 정신, 시대의 표징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례 1, 사목 4, 일치 4, 사제 9,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곳.)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을 통하여 이끌어 가시는 세상 역사 안에서
온갖 좋은 것(善), 옳은 것(義)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하신 당신 나라의 진리를 발견해내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하느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도 결국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믿는 이들이라고 할 수 없고
그럴 때 저 무서운 심판의 말씀이 우리 각자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너는 마지막 한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
"거기"를 연옥이라 해도 좋고, 지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과연 누가 "나는 아니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과연 하느님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도...?
각자가 헤아려볼 일이다.
                                                                                                                                         (59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