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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하느님을 닮고, 담는 기도

by 大建 2015. 10. 8.

연중 제27 주간 목요일(루까 11,5-13)


우리 그리스도인 신앙 생활, 영성 생활의 목적은 하느님과의 온전한 통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며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라는 대화의 수단으로써 하느님과의 통교를 다져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루까 5,16). 3년 동안의 짧은 공생활 기록인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까 18,1)고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까 11,9-10)라고 약속하셨다.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기를 명하신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닮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만나고 그렇게 해서 사랑하게 되는 사람을 닮게 마련이다. 우리가 기도 중에 하느님을 만나 그 분의 진선미를 자주 대하게 되면 우리의 영혼, 정신, 마음도 성화되고 정화될 것이다. 따라서 우선 그분과 자주 만남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매일 성체조배와 기도, 묵상 시간을 자주 가지며, 그분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여갈 때 우리는 신앙 생활, 영성 생활에서 조금씩 더 진보하게 될 것이고 그분께 보다 가까이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영혼과 정신이 정화되고, 성화될 때, 무엇을 기도하고, 무엇을 청해야 하는가를 올바로 깨닫게 될 것이다. 하느님을 닮겠다고 하면서 나 혼자만 잘 살게 해달라고 청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청하기만 하고 감사와 찬미드리는 생활, 그분의 말씀과 뜻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된 사랑이며 위선인 것이다.


그저 청원기도만 드리는 사람, 그것도 이기적인 청원만 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동전을 넣으면 자동으로 커피를 뽑아내는 자판기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기도에 대해 깨닫고 그분의 뜻에 맞는 청원을 드릴 줄 아는 사람, 즉 "나에게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하고 기도드릴 줄 아는 사람은 하느님과 통교를 이루는 사람이요, 그분이 더 이상 他者(나와는 관계가 없는 존재)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시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분, 내 인생의 목표가 되는 분, 내가 끊임없이 닮아나가야 하는 분임을 깨닫은 사람인 것이다. 


우리 모든 인간은 본디 약한 존재, 부족한 존재다. 완벽하지 않기에 주님의 은총이 필요한 존재다. 그래서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 기도할 때 우리는 그분의 완전성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고, 그리고 올바른 청원을 하며 살아갈 때, 그분은 우리를 진정으로 충만한 삶으로 이끌어 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기도는 하느님 자신을 우리 자신 안에 담는 행위인 것이다.


기도의 힘을 믿으며 하느님께로 나아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