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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부활의 증인들

by 大建 2009. 4. 19.
부활 제2 주일(사도 4,32-35)

한국사람 중에 누가 만일 "거북선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대부분이 당시의 거북선의 유물을 실제로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극히 단편적인 역사자료에만 전해져 내려오는 거북선의 존재를 믿을만한 것으로 여기고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거북선의 존재를 믿는 것은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근거 때문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아직 광복절이 되려면 4달 가량이 남았지만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왕이 항복을 선언하고 조선의 해방을 발표했을 때
라디오를 통해 직접 그 음성을  들은 사람들 중에도 처음에는 실감나게 믿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 자신이 왜놈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닐 수 있고 우리 말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등
참으로 자유를 체험했을 때 비로소 우리 나라가 해방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게 되었고,
그 후손들인 우리는 비록 그러한 기쁨을 맛보지는 못했지만 우리 조상들이 실감나게 전해주는 광복의 그 사건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극히 소수의 문헌들만을 근거로 하여
잔해조차 발견되지 않고 있는 거북선의 존재 사실을 믿는다면,
왜,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목격하고 기록해 놓은 책인 성서를 근거로 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는 말인가?
또 우리가 49년전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가들과 조상들이 기록하고 전해주는 그 기쁨을 마치 우리의 것인 양 당연시하고 믿는다면,
왜, 2000여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체험하고 기뻐했던 예수님의 부활, 부활하신 예수님을,
단지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다 해서 부정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우리가 흔히 과학적, 합리적 사고방식이라고 부르는 것도
쉽게 말하면 어떤 믿음의 체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세상 만사를 논리로서만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만사 중에 인간의 짧은 지식과 경험으로 증명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불가능한 것이 있을 수 있으며 또 그분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모두 증명할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상처에 손을 넣아 보고서야 부활을 믿는 토마 사도에게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복되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다시 한번 역사적 측면에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예수라는 사람이 실제 생존했던 인물임은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된다.
이 예수라는 사람을 따르던 제자들은 그분이 죽으신 후 공포에 질려 츹어졌고 숨어서 지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얼마뒤에 다시 모여 사형당했던 예수가 부활했고 자신들이 그분을 뵈었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던져 순교하였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사도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라면 그러한 거짓말을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지는 바보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거짓이 아닌 참된 역사적 사건이었기에, 그리고 이러한 부활 사건 때문에 자신들의 삶이 변하였기에,
기쁘게 목숨을 바친 이들의 믿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믿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의 신앙이요
또 그런 믿음을 가진 이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십자가에 처형된 사형수를 구세주라고 믿는 희한한 종교인 그리스도교는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교회야말로 예수 부활의 가장 확실한 증거인 셈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오늘 제1 독서에서 우리가 들은 대로 초대 교회에서는 정말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며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신도들은 모두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받았다"(사도 4,32-33).
주님의 부활이라는 사건이 없었다면 어떤 미친 사람들이 자기 물건들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남에게 나누어 주겠는가?

예수님의 부활은 이렇게 사도들과 신자들의 삶의 모습을 변화시켜 주었으며 때로는 목숨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내어놓게 하였다.
그들에게는 확신에 찬 어떤 기쁨과 희망이 있었다.
교회는 바로 이 기쁨과 희망을 길이 전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 모두가 부활을 목격하지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도 못했지만 부활을 틀림없는 것으로 믿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 이웃들에게 전하여 우리가 누리는 그 기쁨을 그들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말로만 전할 때 효과가 없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처럼 우리도 기쁨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우리의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진실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진실한 믿음일수록 우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진실한 믿음은 우리 이웃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우리를 우러러 보게 하고,
주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실 것"(사도 2, 47 참조)이다.

오늘날 거북선은 잔재조차 발견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