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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구약의 하느님, 신약의 하느님?

by 大建 2009. 4. 22.
흔히들 말하기를 "구약의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이시고
신약의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시라고 말들 한다.

그러나 내가 성경을 읽어보고 공부한 바에 의하면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구약의 하느님이나 신약의 하느님이나 모두 같은 정의의 하느님이시요,
또 무엇보다도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진정 구약의 하느님께서 신약의 하느님과는 다른 정의의 하느님이라면
나는,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그러한 하느님을 믿지 않았을 것이고,
진작에 구약성경을 폐기처분하였을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을 수식하는 말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HESED"라는 말인데,
이는 "자비"를 뜻하는 말이요,
또 다른 표현으로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말이다.

이렇게 하느님은 근본적으로 사랑 자체이신 분(1요한 4,16)이요,
그분께서 간혹 벌을 내리시더라도 징벌 자체를 위한 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교육의 일환으로 벌을 내리실 뿐만 아니라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요엘 2,13) 분이시다.

그분께서 구약의 시대나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신약의 시대에나 줄기차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이제라도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는 것"(요엘 2,12), 
즉 우리가 회개하는 것, 하나뿐이다.


바로 그 사랑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를 지내는 오늘날까지 교회 안에는
하느님을 심판의 하느님, 징벌의 하느님으로만 여기며 두려움의 대상으로 몰고가는
그릇된 신심에 빠져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계시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위선을 쌓으며, 계명지키기에 급급한 신앙, 율법주의적인 신앙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을 굽어보시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마테 17,17)하고 한탄하실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는 삶,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기쁘게 그분께 돌아가는 삶을 살기로 하자.

징벌에 다한 두려움으로 억지로 죄를 피하는 삶이 아니라,
자유로이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
구원의 영원한 생명 안에 사는 삶을 살기로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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