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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

프사모 성지 순례 6 - 살라망카(Salamanca)

by 大建 2010.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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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1/30, 토) 아침 역시 우리는 서둘러 길을 떠나야 했다.
아빌라까지의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티마에서 산티아고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아빌라로 향하여 남쪽으로 내려오는 여정이니
조금은 이상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장거리 버스 여행에서의 중간 기착지는 살라망카였고 거기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되어 있었다.

버스로 이동 중에는 어제 보지 못했던 파티마에 관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예전에 나왔던 작품 처럼 단순히 발현사실을 종교적으로 각색한 작품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배경이 삽입되어서 한결 흥미를 돋구고
또 시대 상황 안에서의 발현 사건을 이해하기 쉽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저 DVD를 나중에 본당의 신자들에게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워낙 장거리 여행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본인 말대로 버스 안에서 작은 화면에 집중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지
한 자매가 멀미를 하여 우리는 이 자매와 버스 기사의 휴식을 위하여
싸모라(Zamora)의 한 작은 마을에서 멈추어 가게 된다.

30여분의 휴식을 취하고 버스는 다시 달려, 살라망카에 도착하여
2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허기가 진 배를 어느 중국식당에서 채울 수가 있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모두들 맛있게 식사를 한 후 우리는 대성당과 인근을 자유롭게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살라망카는 본래 성지 순례의 목적지 중 하나는 아니다.
13세기에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 프랑스의 파리대학에 이어 유럽에서 3번째로 세워진 살라망카 대학이 있는 대학도시로서 오늘날도 젊음이 넘쳐나는 활기 찬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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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망카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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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내의 여러 성모상들

11세기 전설적인 스페인 영웅 엘시드를 수행한 주교 예로니모의 이름을 붙여 1102년에 건설된 이 웅대하고 성스러운 건물 외부 벽은 전설 속의 동물상들과 성인들 조각상들이 넝쿨나무와 어우러져 조각돼 있다. 그런데 이들 이미지와 시대상으로나 성전의 고전적 분위기와 전혀 다른 현대 우주 비행사가 한 명 포함돼 있다. 어떤 이는 그 옛날 고대, 중세 암굴화나 명화에 UFO와 외계인 형상이 나타난다며 건설 당시 다양한 외계인들과 유럽인들이 접촉하고 있었음을 이 조각상이 말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네티즌은 이 조각이 최근 보수 공사 도중 조각물 보수 팀 가운데 누가 장난으로 나사 우주인을 추가했다고 살라망카 여행 중 관광가이드로 부터 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같은 주장들이 사실일 수 없다는 반론들도 만만치 않다. 역사에 길이 남는 유적에 장난을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며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 사진을 보면 보수 공사를 한 것은 맞지만 이 우주인은 새로 만든 것이 아니고 옛날부터 있던 우주인의 부서진 얼굴들과 등나무와 무릎 부위에 나뭇잎만을 복구한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조개의 집(Casa de las Conchas)

15세기 후반에 지은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성 야곱을 상징하는 약 400여 개의 조개로 외벽을 장식했기 때문에 조개의 집이라고 부른다. 이 집은 원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자를 지키는 기사단 기사 중의 한 명인 로드리고 말도나도가 지은 개인 저택이었다. 현재는 도사관 건물로 쓰이고 있으며 1층에는 관광안내소가 있다. 건물 자체가 가리비 모양의 조개로 둘러싸여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조개의 집 안뜰은 당시 유행하던 이사벨 여왕 시대의 고딕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보물과도 같은 곳이다.

시인 살리나스(Salinas y Serrano, Pedro)의 동상. 누군가 익살스럽게 입에 담배꽁초를 물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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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망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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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망카(Salamanca)

살라망카(인구 160,000)는 스페인 서쪽,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의 살라망카 주의 수도다.
살라망카시는 토르메스 강 옆 산에 위치한다. 이 강엔 길이 150 m의 교각이 존재하고, 총 26개의 아치 중 15개는 로마시대에 세워졌다. 나머지는 16세기에 완성된 것들이다.
이 도시는 두에로 강의 주변 영토를 지키기 위한 켈틱 부족(바떼오스)의 요새들 중 하나로, 고대로마시대 이전에 설립되었다. BC 3세기,카르타고가 로마공화국에 의해 멸망하고, 한니발의 도시정복 후, 상업적 허브로 발전하게 된다. 그때 당시, 엘만티카(Helmantica), 살만티카(Salmantica)라고 불렸다.
AD712년, 살라망카는 무어인에 의해 포위된다. 방어적인 도시 성벽은 한 층 강화되고, 모사라베(무슬림 지배하의 기독교인들)들은 성벽 밖으로 쫓겨난다. 이 시기엔, 어쨌든, 아스트르-레오네세왕국들(the Astur-Leonese kingdoms) 간 끊임없는 싸움이 이어졌고, 이 도시는 아무도 살지않는 도시로, 북쪽의 기독교와 남쪽의 무슬림에의 사이에 놓이게 된다. 20세기, 기독교세력의 라몬 데 보르고아(알폰소6세-카스티야왕의 사위)에 의해 재정복된다.
살라망카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는, 1218년 알폰소9세가 살라망카 대학을 설립한 것이다. 곧, 이 대학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하고 명문의 대학이 되었다.
나폴레옹군대의 반도전쟁의 1812년 7월 22일의 살라망카 전투는, 프랑스군에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서쪽 1/4이 파괴된 살라망카군에게는 힘이 쇠약해진 전투였다. 이 전투는 수천만의 사람이 한 장소에서 대포에 의해 짧은시간동안 대학살된 군대 역사상의 유명한 순간이다.
구시가지 전체가 1984년에 유네스코 지정 인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cf. http://ko.wikipedia.org/wiki/%EC%82%B4%EB%9D%BC%EB%A7%9D%EC%B9%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