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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는다

by 大建 2010. 2. 24.

사순 제1 주간 수요일(루까 11,29-32)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의 지혜를 따라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땅에 속하는, 육에 속한, 세속적인 지혜 즉 욕심에서 나오는 꾀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도 바오로는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라고 했다(1코린 1,22). 유다인이 구하는 표징과 그리스인이 구하는 지혜, 이 두 가지는 모두 당시의 세상을 지배하고 좌우하는 통념이요 가치관이며, 동시에 사도 바오로가 보기에 잘못된 가치관을 말한다.

유다인이 구하는 표징이란 무엇일까? 표징은 곧 눈으로 드러난 기적을 의미하며, 그러므로 표징을 구하는 태도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눈에 띄게 뭔가를 해주기를 기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인간들 자신의 주장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하느님의 능력을 눈으로 보이게 드러내달라는 요구이다. 한마디로 하느님을 시험하는 태도요, 하느님을 자신의 욕구충족 수단으로 삼는 태도를 말한다. 유다인들이 이와 같은 표징을 구하는 태도는, 그들이 겉으로 볼 때 진실하게 하느님을 믿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과 자신들의 가치관과 전통에 따라 하느님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있는, 일종의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과는 뭔가 다른 것, 특별한 것, 획기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일반적 기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또 그것은 삶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충동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일상의 삶에서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일상의 삶의 의미를 망각하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갈구하는 것도 같은 경우이다. 열심히 하느님을 부르짖고 특별히 뜨거운 '은총의 체험'을 하지만, 그것이 일상의 삶하고는 상관이 없다. 언제나 갈증을 느낀다. 특별한 경험을 통해서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보면 보잘 것없어 보이는 일상에 의미를 둘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일상의 삶에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인도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상의 삶은 늘 무의미하고 따분하게 되는 것이다.

'표징을 구하는 유대인들'의 기대심리가 갖고 있는 함정은 그런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표징을 구하는 유다인들을 향해 질타했다(루까 11,29-32). "표징을 보여 줄 것이 있다면 요나의 표징 이외에는 없다". 바로 예수님 자신의 삶을 겨냥하여 죽을 몸이 죽지 않을 몸으로 변화는 삶의 관계의 변화, 곧 부활 이외에는 다른 표징을 기대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말해 '삶의 변화'이다. 그것을 뛰어넘는 무슨 표징을 구하느냐는 것이다.

 
니네베 사람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듯이, 우리도 표징, 기적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 안에서 우리 삶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으로 변화시킬 때, 즉 회개의 생활을 해나갈 때 그것이 참된 기적이요, 참된 표징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교가 구하는 지혜는 십자가의 지혜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1코린 1,23-24).

                                                                                                          (0M-2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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