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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by 大建 2020. 1. 28.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학자 기념일(연중 제3 주간 화요일: 마르 3,31-35)


설 명절 동안 함께 모였던 가족이 다시금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 조금의 후유증과 함께 일상 속에 묻히게 되는 시기이다.
오래간만에 자식들을 만난 부모님들은 그들이 떠난 빈 자리가 허전해서 며칠 동안 또 마음고생을 할 것이고, 자식들도 나름대로 부모 형제와의 해후를 통하여 마음 속으로 들어온 온갖 긍적적이거나 부정적인 온갖 감정의  잔해들을 추스려야만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가족은 과연 무엇인가?"
때로는 아무 것도 아닌 자그마한 일로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동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회복될 수 없을만큼 날카로운 말끝으로 내 가슴을 후벼파기도 하는 저 사람들, 가족은 과연 어떤 존재들일까?


서로 사랑하며 말 한 마디라도 조심하고, 온 마음으로 기쁨과 슬픔을 나눌 때 "혈연이라는 것이 이렇게 좋구나" 하기도 하지만, 조그만 상처를 주는 것이 때로는 같은 크기의 상처를 주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으로 다가올 때, 혈연도 남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역시 참된 사랑의 관계만이 가족이라는 끈을 이어가게 해 주는 것임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어머니가 밖에서 기다리며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고 말씀하신다.


당신을 낳아주었다고 혈연이라는 특별한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 권리를 당연히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하느님의 종, 메시아로서 이 세상에 오신 당신의 친인척, 당신과 가까운 사람, 당신과 한 무리에 속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외적인 조건, 혈연 관계가 그 사람의 인격과 자질, 품성을 자동적으로 지정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한 인간의 인격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그 사람의 행실이며, 특히 하느님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외적인 조건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가 여부가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님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는 말씀을 드렸고, 실제로 하느님의 뜻이 자신 안에서 실행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내어드린 분임에 틀림없기에 주님의 어머니로서의 권위를 상실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도 성모님을 본받아 우리 삶 속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삶을 이어나감으로써 그리스도와의 툭별한 관계, 그분의 제자됨, 그리스도인의로서의 권위를 지켜나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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