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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하느님은 자비하시다"

by 大建 2020. 3. 9.

사순 제2 주간 월요일(루까 6,36-38)


오늘 복음 말씀의 대전제는 "하느님은 자비하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하느님을 믿고 아버지로 모시는 우리도 자비로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거짓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자비로운 자세로 살아갈 때 우리는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않고, 또한 쉽게 용서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을 제대로 믿지 않고 따르지도 않는 사람은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하며 용서하지 않아 말 그대로 무자비한 존재가 된다. 이들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알지도 체험하지도 못했기에 그러한 하느님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볼 줄도 모르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지도 않기에, 자신이 틀릴 수도 있으며 자신의 죄가 타인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다른 이들에게 무자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무자비한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온갖 좋은 것을 다 베풀어주신다면 그분은 자비하시지도 정의로우시지도 않게 되는 것이니 그러한 일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며, 일시적으로 무자비한 사람이 기고만장하여 사는 일이 있을 수 있지만 오래가지 않아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의 공의로우심이 드러나게 된다.  그것을 심판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쉽게 판단받고, 그로 말미암아 자기가 그러했듯이 마찬가지로 자신도 이웃들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나가게 되는 것이니, 이는 하느님이 자비하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행실대로 이웃들로부터 온전히 돌려받는 것 뿐이다. 부메랑 효과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결국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시지도 공정하시지도 않다고 그분 탓을 하니 이 어리석음을 어찌해야 할까!


하지만 하느님께서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다니 9,9)이라는 것을 체험하고 깨달은 사람은 그러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살게 되며, 그토록 무한히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본받아 타인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포용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온갖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당신의 선(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담아 주실 것이다"(루까 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