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타는 목마름으로

by 大建 2008. 2. 24.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1982)
==================================================================


사순 제3 주일

7,80년대 군부 독재의 침울한 시절을 거쳐온 사람이면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목마름이라는 단어와 항상 함께 떠오르는 시, 그리고 김광석의 노래이다.

교정에서 최루탄 냄새를 맡는 것이 다반사였고 시위가 끊이지 않던 70년대 박정희의 군부독재에
곧바로 이어진 80년대 전두환의 철권 통치에 참다운 의기로 치를 떨던 당시의 청년들은
정말로 타는듯한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구하였다. 참으로 정의에 목말라하던 시대였다.

그 당시 젊은이들이 주술처럼 외우고 노래하던 시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무엇에 목말라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돈, 명예,  성(性)...?

진정으로 타는 목마름을 겪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 방울의 물이 그렇게 큰 기쁨이 될 수가 없다.
예수는 그런 목마름으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생리적 목마름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과의 친교를 갈구하는 목마름,
그들의 아픔을 당신 것으로 삼고 그들과 하나되려는 목마름이었다.
바로 이것이 하필이면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에서, 또 하필이면 죄녀에게 물을 청하신 이유였다.

당시의 온갖 제도, 편견으로 말미암아 소외된 이들이,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해 타는 목마름을 내적으로 느끼고 있는 이들이
생명의 물이 샘솟는 당신 가슴으로부터 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친교의 물을 청하면서 오신 것이다.
"물을 달라"는 단순한 한 마디의 말이 그들의 가슴을 녹였다.
사마리아 죄녀는 갈증을 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에 예수님과 대화를 이어간다.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 내면의 갈증을 풀어주시기 위해서
사소한 일상 안으로부터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우리의 타는 목마름 - 구원에의 목마름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서
우리의 사랑에 목말라 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그분으로부터 샘솟는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부터 오늘까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그분과의 상종을, 그분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를 외치실 수 밖에 없었다(요한 19,28).
그분은 여전히 우리의 사랑에 목말라 하신다...







'믿음 희망 사랑 > 강론,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가 날 알아?  (2) 2008.03.01
멀리 바라보이는 하느님 나라  (4) 2008.02.29
단순한 마음  (0) 2008.02.22
영광을 위하여  (2) 2008.02.17
광야로 나가자  (0) 2008.02.10